<비커밍 페이스북> 마이크 회플링거 지음, 정태영 옮김, 부키 펴냄.

 

페이스북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6년 6월 야후의 파격적인 인수제안 때문이었다. 야후는 22세의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에게 무려 10억달러(1조1200억원)를 줄 테니 회사를 팔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페이스북은 2년 된 신생기업으로 이용자 수는 900만명, 수익은 2000만달러 수준이었다.

모두가 매각을 당연시 하는 가운데 22살의 저커버그는 야후의 통 큰 제안을 거절하며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거절 이유는 “우리가 페이스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1년, 야후는 포털사업을 통째로 통신업체 버라이즌에 넘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매각금액은 44억8000만달러(5조원)에 불과했다. 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페이스북은 창업 12년 만에 시가총액 5492억달러(약 614조원, 7월 3일 기준)의 초대형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책은 위대한 리더의 반열에 오른 저커버그라는 인물을 살펴보고, 페이스북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실패와 위기, 성공 비결을 조명하고 있다. 그중 페이스북이 플랫폼 제국으로 우뚝 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여섯 가지 결단을 요약한다.

<1> 뉴스피드 론칭=페이스북은 2006년 야후의 인수제안을 거절한 직후 ‘뉴스피드’를 구축하고 론칭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이용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라는 질문이라고 판단했다. 2006년 9월 5일 첫선을 보인 뉴스피드는 성장을 거듭해 10여 년이 흐른 지금 ‘1분마다’ 2억개의 이야기를 전 세계의 스마트폰으로 공급하고 있다.

<2> ‘좋아요’ 버튼 도입=2009년 2월 뉴스피드에 ‘좋아요’ 버튼을 달자 댓글만 달 때에 비해 데이터 생성이 10배 폭증했다. 공감 기능(좋아요, 사랑해요, 웃겨요, 놀라워요, 슬퍼요, 화나요)을 추가하면서 이용자들은 한층 다양한 반응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3> 샌드버그 영입=저커버그는 2008년 구글에서 셰릴 샌드버그를 스카우트해 광고사업을 맡겼다. 그로부터 3년 지난 2011년 페이스북은 100억 달러의 광고사업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뉴스피드에 구글과 비슷한 경매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는 광고를 도입한 것이 주효했다.

<4> 인스타그램 인수=2011년 인스타그램을 인수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상호보완적인 특성을 지니며, 인스타그램을 끌어들임으로써 멀티 앱 전략을 통한 다각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직원 13명에 매출 0달러의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에 인수한 저커버그는 2018년 6월 현재 월간이용자 10억명, 기업가치 1000억달러(111조원)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키웠다.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과 상호보완적이다. 인스타그램 이용자의 75%가 35세 이하의 밀레니얼 세대인 반면 페이스북은 35살 이상 이용자가 50%를 넘는다.

<5> 기업공개=2012년 기업공개 이후 주가가 폭락했다. 한창 때의 절반 수준인 17.73달러까지 떨어졌다. 그해 9월 11일 저커버그는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콘퍼런스 무대에 올라 거친 언사로 악명 높은 <테크크런치> CEO 마이클 애링턴과 대담을 나누었다. 페이스북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정력적이고도 여유로운 태도로 페이스북이 어떤 식으로 추락을 멈추고 반등할지 설명했다. 지난 1년간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 등 모바일 우선의 제품 개발로 기업의 방향을 전환하는 노력이 완료되었으며, 향후 모바일 뉴스피드로 광고영역을 확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저커버그의 대화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대화가 끝나고 페이스북의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7월 3일 현재 주가는 192.73달러다.

<6> 왓츠앱 인수·페이스북 메신저 독립=2014년 페이스북은 왓츠앱을 인수하고 페이스북 메신저를 독립시켰다. 10억명 이상이 이용하는 2개의 메시징 플랫폼은 상호보완적이다. 왓츠앱은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지배적이며, 메신저는 미국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상호 경쟁하며 대중적 인기를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