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 지방 정부가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현지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전체가 충격을 받은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에 미칠 후폭풍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득일 것으로 보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에 나서고 있다. 출처=마이크론

마이크론 제재… 2개의 시나리오

푸젠성에 있는 푸저우(福州)시 중급인민법원은 3일 마이크론 메모리 반도체 제품 26종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마이크론이 일부 중국과 대만 업체를 상대로 특허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자, 중국과 대만 업체가 마이크론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겨냥하며 맞소송을 걸었고, 중국 지방 법원이 후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재개되며 불거진 사태라 특히 심상치 않다. 미국이 중국에 보복관세를 준비하며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대의명분으로 걸었다는 점과, 중국 지방 법원이 마이크론 판매 금지 판결을 내리며 지식재산권 침해를 거론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지식재산권을 역으로 미국 기업을 공격하는 것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사태는 미국과 중국이 6일부터 각자 연 500억달러 수준의 25% 추가관세 카드를 빼들기 직전에 벌어졌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이 불을 뿜기 시작하며 마이크론이 일종의 유탄을 맞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시각으로 보면 크게 두 가지 전략적 포석이 깔렸다. 먼저 중국 반도체 굴기를 위해 강력한 경쟁자를 쳐내는 전략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이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다. 막대한 메모리 반도체를 수입해 시장에서 소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외국 기업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나서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규정하며 국산화 작업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우한의 반도체 업체 XMC를 직접 시찰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반도체 펀드를 운영하는 한편, 최근에는 50조6200억원에 이르는 새로운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도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전략을 구사하며 자연스럽게 미중 무역전쟁의 당사국 기업인 마이크론을 쳐내는 효과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 강화와 미중 무역전쟁 당사국 기업인 미국의 마이크론을 견제하는 전략이 화학적 결합을 통해 초유의 판매금지 판결을 끌어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굴기, 미국 기업 타격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마이크론 제재에 착수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제재의 시작이 미중 무역전쟁의 연장선이며, 만약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마이크론을 향한 제재도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뜻이다.

▲ 중국의 반도체 굴기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중국 ZTE 사례가 대표적이다. 1차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지난 5월 당시 미국은 ZTE에 대한 제재 완화에 착수했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지난달 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후폭풍은 상당했다.

당장 ZTE는 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내는 등 휘청였다. 일각에서는 주력인 모바일 사업부 매각 가능성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명의의 행정명령으로 ZTE 구제로 선회했고, 지금도 여진은 이어지고 있으나 굵직한 갈등국면은 해소됐다는 평가다. 중국도 상황에 따라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차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당시 중국이 마이크론의 수입 물량을 크게 늘리겠다는 뜻을 밝힌 대목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무역전쟁이 불을 뿜었던 3월,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무역적자 해소 방안 중 하나로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국 적자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미국산 반도체,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 구입을 확대해 ‘성의’를 보이겠다는 의지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의존하던 메모리 반도체 공급선을 마이크론에 집중해 전쟁의 확장을 막겠다는 복안도 깔렸다. 현재의 마이크론 사태에 비춰보면 아이러니한 과거지만, 타협을 위한 불씨는 살아 있다는 뜻이다.

2차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인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은 있지만, 이번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최근 미국이 5G 전략을 세우고 있는 한국에 중국 차이나텔레콤과 협력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웨이의 미국 진출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절되는 등 미국의 중국 ICT 굴기에 대한 견제의식이 여전한 상태에서 중국이 방대한 내수시장을 볼모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장기적으론 불안요소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에 나서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기적으로 이득을 볼 전망이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내수시장 수요는 여전하며, 공급 경쟁자인 마이크론이 주춤하는 틈을 활용해 외연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소폭 반등한 것도 비슷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마이크론이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분명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부터 외국 반도체 기업들의 D램 가격 담합 의혹을 조사했으며, 현지 언론도 일제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을 쏟아낸 바 있다. 중국 당국의 타깃이 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다. 최근 마이크론이 현지 부품업체와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한편,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의 타깃이 됐기 때문에 1차 제재대상이 됐으나 상황이 바뀌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도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타깃이 D램 글로벌 시장 1위와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점도 중요하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중 D램 기준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다. 44.9%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2위는 27.9%의 SK하이닉스다. 3위에는 22.6%의 마이크론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난야와 윈본드 등이 4위와 5위를 달리고 있지만 점유율이 각각 2.8%, 0.8%에 불과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데다 이들은 톱3 기업에 비해 2선급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중국 반도체 시장의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여파로 가격이 상승하자 자국 기업의 불만이 팽배해졌고, 결국 중국 당국이 톱3 기업을 압박하며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첫 타깃이 마이크론일 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한 압박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중국이 단기간에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을 품어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내수시장 수요가 있기 때문에 톱3 기업을 한꺼번에 쳐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고려하면 실제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비중을 줄이기 어렵다”면서 “반도체는 원자재에 가까운 제품이기 때문에, 당장의 타격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마이크론을 제재하고, 마이크론 제재를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해 완화한다면 중국 반도체 굴기를 위해 반대급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눌 가능성도 크다. 마이크론 사태에 국내 반도체 업계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