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미국의 대 이란 제재로 국제유가가 연말에 배럴당 최고 115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3대 산유국인 이란의 석유산업을 뭉게기 위해 원유수입국들의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을 요구하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하도록 압박하고 있지만 국제유가만 올려놓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원유수입국들에게 오는 11월4일까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완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루 200만배럴 이상, 최대 240만배럴의 이란산 원유 수입을 몇 달 안에 완전히  중단시키겠다는 게 미국의 목표다. 

그런데 엉뚱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바로 국제유가 상승이다. 2일 현재 배럴당 74달러선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77달러선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4분기에는 모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분석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미국 CN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원자재 투자 회사인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는 이란산 원유가 실제로 봉쇄된다면 WTI는 4·4분기 배럴당 85∼100달러에 이르고, 최고 105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꽤 있다고 내다봤다. WTI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는 브렌트유는 110∼115달러가 될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씨티그룹 에릭 리 에너지 애널리스트는 CNBC에 “시장 참가자들은 의도된, 또는 의도되지 않은 공급 부족 탓에 가격이 폭등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프란시스코 블란슈 상품과 파생상품 조사부 대표는 “미국 국무부의 메시지 중 일부라도 통한다면 유가는 20∼25% 오를 가능성이 있다”면서 “미국 행정부가 이란산 원유 제로수입 이행을 집행한다면 격 폭등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이란이 제재를 받았을 때 현재 이란의 원유수출 물량 즉 하루 240만배럴의 약 절반 정도가 시장에서 배제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에 다시 이란에  제재가 가해질 경우 40만~100만배럴 정도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즉 미국이 정한 목표의 절반 정도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분석가들은 수출물량의 절반이 시장에서 배제된다고 하더라도 공급차질이 불가피하도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사우디에 석유 생산을 대략 200만배럴까지 늘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지만 사우디가가 얼마나 신속하게 공급을 늘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우디의 공급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에 200만배럴 증산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출처=트럼프 대통령 트윗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14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 10개국은 배럴당 100달러 이상 수준으로 유가를 올리는 '유가재균형'을 목표로 지난해 초부터 하루 180만배럴의 감산합의를 이행해왔고 지난달 감산이행률은 152%를 기록하는 등 산유국들은 할당량 보다 더 많이 감산합으로써 유가를 계속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OPEC 등은 지난달 22~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회의를 갖고 하루 100만배럴을 증산하기로 했으나 시장은 이를 "예사보다 덜 공격적으로 증산한다"고 받아들였고 유가 오름세는 이어지고 있다.

유가 상승은 트럼프에게도 별로 손해볼 일은 아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빈사상태에 빠질 것 같은 셰일업체들이 살아나 셰일오일을 쏟아내고 그 덕분에 미국의 산유량과 원유수출량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미국의 산유량은 지난달 현재 하루평균  1090만배럴, 수출은 300만배럴을 넘어섰다. 산유국들이 피땀흘려 감산한 올려놓은 고유가의 결실을 미국이 챙긴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란 제재를 통해 이란 석유산업을 황폐화시키면서 고유가로 자국 석유업체들의 수입도 올리려는 두 마리 토끼 잡이를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유가는 미국의  석유업체들의 주가를 올리는 효과도 있지만 수입물가 상승 등 물가상승과 이에 뒤이은 기준금리 인상압박을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에 가할 수도 있다. 트럼프발 고유가는 고유가로 수입국에 비용부담과 물가부담을 지우면서 자본유출 부담까지 지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원유수입국들에겐 이중삼중의 고통을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