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재계의 발 빠른 대응으로 당장 7월부터 제도의 적용을 받는 직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들 대부분은 업종의 성격이나 회사의 형편에 맞추어 나름의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일부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표현 그 자체에 가장 충실하다 할 수 있는 ‘PC오프제’를 도입해 업무시간 이외에는 직원들이 근무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 원천적으로 시간 외 근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가 하면,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특정 시간대에는 비효율적인 회의나 SNS 활동 등을 금지하는 ‘집중 근로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하는 데 부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모든 업종이나 회사에 적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 52시간 근무제의 본래적 취지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26일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를 발표하여 각 사업장이 형편에 맞추어 ‘유연근로시간제’를 도입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연근로시간제란 근로시간의 결정 및 배치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업무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근로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하거나 근로자의 선택에 맡김으로써 근로시간을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는 별도로 정한 근로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앞서 살펴본 PC오프제나 집중 근로시간제와 달리 유연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 상에 법적 근거가 있는 제도로서 탄력근로시간제(제51조), 선택적 근로시간제(제52조),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제58조 제1항, 제2항), 재량근로시간제(제58조 제3항), 보상휴가제(제57조)가 이에 해당한다.

우선 탄력적 근로시간제(제51조)는 일이 많은 주(일)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일)의 근로시간을 줄여 평균적으로 법정근로시간(주40시간) 내로 근로시간을 맞추는 근무제도로 한 해 중 시기별로 업무량 편차가 많은 업종에 적합하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제52조)는 일정기간(1월 이내)의 단위로 정해진 총 근로시간 범위 내에서 업무의 시작 및 종료시각, 1일의 근로시간을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로 근로시간이나 근로일에 따라 업무량의 편차가 발생하여 업무조율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 사무관리(금융 거래․행정처리 등), 연구, 디자인, 설계 등의 업종에 적합하다.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근로기준법 제58조 제1․2항)는 출장 등 사유로 근로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근로하여 근로 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소정 근로시간 또는 업무수행에 통상 필요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인정하는 근무제도로 영업직이나 A/S업무와 같이 근로시간 대부분을 사업장 밖에서 근로하는 경우에 적용할만하다.

재량 근로시간제 (근로기준법 제58조제3항)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업무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서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로 정한 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로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1조 및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는 업무로 연구개발, 신문, 방송 또는 출판사업의 기사 취재, 평성 또는 편집, 회계, 법률사건, 납세 등의 사무에 있어 타인의 위임, 위촉을 받아 상담, 조언, 감정 또는 대행을 하는 업무에 한하여 적용할 수 있다. 끝으로 보상휴가제(근로기준법 제57조)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통해 연장․ 야간․휴일근로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 하는 대신 유급휴가로 부여하는 제도로 업무를 완료한 이후에는 일정기간 휴식기간을 가지는 직무, 다른 인력으로 하여금 대체업무 수행이 가능한 연구․교육 등의 직무에 적용할만하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유연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 변경 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필수적이어서 1차적으로는 사용자가 회사 상황에 맞는 제도를 선택하고 이를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설명,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2주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제도 도입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반해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 보상휴가제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필요한데,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의 서면 합의만으로도 유연근로시간제 도입이 가능하다.

현행 근로기준법 하에서는 유연근로시간제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유연근로시간제는 사용주와 근로자 간의 협의와 합의, 설명과 설득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원만한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노사가 주 52시간까지 주어지는 근무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간다는 측면에서 생산성 향상의 측면에서도 가장 나은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아직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노사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