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구광모 LG전자 ID사업부장이 6월29일 ㈜LG의 회장에 오르면서 LG 4.0 시대가 열렸다. 국내 10대 기업 중 4세 경영자가 그룹 전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에서는 그 흔한 '형제의 난'도 없이 매끄러운 승계과정을 보여준 LG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구 회장의 등판으로 대한민국 경제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가운데, 핵심인 장자승계를 둘러싼 빛과 그림자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새로운 LG, 뭔가 보여줄까
구 회장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 2007년 재경부문 과장을 거쳐 2014년 HA사업본부 부장을 역임했다. 2014년 (주)LG로 넘어와 시너지팀 부장을 거쳐 2017년 경영전략팀 상무에 올랐으며 2017년 11월 인사이동에서 승진하지 않고 LG전자의 신성장사업 중 하나인 B2B사업본부 ID(Information Display) 사업부장을 맡았다.

구 회장의 행보를 살펴보면 그가 후계 경영수업을 받기는 했으나 비교적 실무진으로 활동했으며, 무엇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인상을 받는다. 2017년 11월 인사이동이 대표적이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LG전자 B2B사업본부로 이동했으나 별도의 승진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LG는 "구 회장(상무)는 오너가지만, 당분간 실무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소 여유로운 분위기가 갑자기 급물살을 탄 순간은 올해 2월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월6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ISE 2018(Integrated Systems Europe 2018)이 열린 가운데, LG전자가 이례적으로 구광모 회장(상무)을 언급하는 보도자료를 냈기 때문이다. 이후 부친인 고 구본무 회장이 와병에 들어가며 구 회장은 빠르게 경영전면에 등장했다.

구 회장의 미래는 탄탄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주)LG의 지분을 보면 고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부회장, 구광모 회장의 총 지분이 46%를 넘기고 있다. 심지어 구 회장은 지주사 체제로 움직이는 LG에서 지분을 가진 친인척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지분과 관련된 이슈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부회장의 지분을 양도받으려면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재계에서는 판토스 외곽지원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본다.

구본준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빠르게 손을 때는 것도 구 회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준다. LG이노텍 등 별도의 계열사 분리가 불가피하지만, 최근까지 그룹의 대소사를 챙기던 구본준 부회장이 조카에게 부담이 되어주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선뜻 자리에서 물러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는 평가다.

LG는 전문 경영인 체제가 강하다. 이 역시 구 회장의 향후 행보에 큰 도움이다. 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등 6명이 구 회장을 보좌하며 큰 그림을 그릴 전망이다. 전문 경영인들이 실질적인 로드맵을 수립한다면, 구 회장은 인공지능과 로봇과 같은 신성장 기술 동력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그는 대부분 실무영역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평소 소탈하고 검소하며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연한 사고방식과 젊은 감각으로 새로운 LG를 끌어가는데 제격이라는 평가다.

▲ 구광모 회장이 전면에 등판했다. 출처=LG

그림자도 있다
구 회장의 등판에 재계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 회장이 이끌어 갈 LG 4.0 시대가 제대로 힘을 받으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핵심 계열사의 부진이 고민이다. LG전자는 생활가전과 TV를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으나 스마트폰의 MC사업본부는 여전히 적자 수렁에서 허덕이는 중이다. LG디스플레이도 중국의 반격에 LCD 시장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 구 회장이 단기적인 성과를 내줘야 하는 지점이다. 또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기 때문에 경영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핵심 계열사의 위기와 경영능력 입증을 둘러싼 위기론이 제기된다. 그러나 구 회장은 실무를 돌며 상당한 현장감각을 축적한데다, 전문 경영인들이 포진했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가장 큰 위기는 구 회장의 매끄러운 등판, 그 자체에 있다. 구 회장이 큰 분란없이 경영권을 틀어 쥔 사례는 재계의 칭송을 받을 정도로 신선한 일이지만,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경직성은 구 회장이 이끌어 갈 LG 4.0 시대가 풀어야 할 아이러니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LG는 장자승계를 비롯해 여성에게 직무를 맡기지 않는 등 유교문화가 강한 편이다. 일사분란하게 조직을 운영하며 효율성을 따져야 하는 산업화 시대에는 장점일 수 있으나, 급변하는 초연결 시대를 맞아 유기적인 대응을 보여줘야 하는 현재에는 맡지 않는 옷이라는 지적도 있다. 구 회장의 안정적인 등판을 가능하게 만든 조직의 단결이, 역으로 구 회장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구 회장이 빠르게 전열을 정비한 후 단기적 성과를 통해 재계의 마지막 의구심을 덜어내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십분 활용해 오픈 생태계 정신에 입각한 기업 운영을 시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LG는 독립군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현재 필요이상으로 만연한 반 기업 정서를 타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기업으로 꼽힌다. 구 회장의 등판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축하를 보내는 이유며, 다른 대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구 회장의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