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 직장인 K씨(31·여)는 퇴근길 편의점에 들려 과자 2~3 종류를 샀다. 최근 물가가 올라 괜찮은 과자들은 2000~3000원 대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막장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보면 만족할 만한 상품은 거의 없어 실망할 때가 적지 않다. 포장에 비해 내용물은 턱없이 빈약하게 때문이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덤으로 왔다'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과자 비닐봉지를 질소로 충전해 부풀어 오른 것을 비꼰 말이다. 2014년엔 대학생 세 명이 과대 포장 문제에 항의하며 봉지 과자 160개로 2인용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900m 가량 노 저어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스낵과 과자 봉지 속에 넣는 질소를 소비자들이 곱지 않게 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지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제과업체들에게는 큰 딜레마가 되고 있다. 

스낵·제과업계는 내용물의 파손을 막고 산소접촉을 차단하는 질소충전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허술한 감시를 피해 업체들은 공공연하게 과대포장을 하고 있고 이 탓에 발생한 폐기물에 따른 환경오염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스낵·제과업계의 고민의 골도 깊다.

1일 스낵·제과업계에 따르면, 현행 법령상 과자 비닐봉지의 빈 공간 비율은 35% 이내여야 하는데 업계는 이를 준수하기 위해 고심의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내용물이 65% 이상이 돼야한다는 뜻이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니버터칩, 포테이토칩, 스윙칩 등 시판 감자칩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에서 과자 용량은 50% 안팎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 생감자칩은 내용물이 얇아 파손 우려가 커 질소충전으로 파손과 변질을 방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질소충전으로 내용물이 적어지자 논란이 되고 있다. 출처= 각 사

논란이 일자 2015년 생감자칩 1위 포카칩을 생산하는 오리온은 가격변동 없이 내용물을 10% 증량하고 ‘착한 포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리온은 환경부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2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최상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질소충전이 필요하다”면서 “제일 중요한건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으로 빈 공간이 크다는 소비자 의견을 제품 포장에 반영해 포장제 혁신, 제품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질소를 너무 적게 넣으면 운송과정에서 내용물이 들러붙는 문제가 있고 너무 많이 넣으면 자칫 터질 염려가 있어 적절하게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테이토칩을 생산하는 농심 관계자도 “모든 업체들이 법적 기준에 맞춰 생산하고 있다”면서 “질소를 넣어야 감자 내용물이 부서지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내용물을 늘리면 질소충전량도 그에 비례해 늘려야 한다”면서 “바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포장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스낵업체의 의견도  같았다. 이들 업체들은 과대포장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제품은 생감자칩 제품으로 내용물이 얇아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질소충전이 꼭 필요하다며 포장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낵·비스킷 매출액은 2조4465억원이다. 과자 한 봉지에 2000원씩 잡으면 지난해 12억2325만개의 스낵과 비스킷이 판매된 셈이다.

이를 감자칩 비닐봉지 10g 기준으로 다시 한 번 계산하면 지난해 발생한 폐비닐은 1만2232t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비닐봉지는 대부분 소각장에서 태우는 만큼 대기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비닐봉지 사이즈를 지금보다 3분의 1만 줄여도 폐비닐은 연간 3670t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스낵의 질소충전뿐만 아니라 제과류의 과대포장도 문제다. 국내 상점에서 팔리는 오레오(30개입) 과자를 먹으려면 포장을 세 번 뜯어야 한다. 코팅 종이 박스를 뜯으면 안에 더 작은 종이 박스 세 개가 나온다. 이 박스를 열면 봉지당 오레오 과자 다섯 개가 든 비닐봉지 두 개가 나온다. 총 세 번에 거쳐 포장을 뜯어야만 과자를 먹을 수 있다.

▲ 북미에서 판매하는 '오레오' 제품은 한 번의 비닐포장으로 공간과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있다. 출처= 구글
▲ 국내에서 판매하는 '오레오' 제품은 '공기반 제품반'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로 과대포장이 심각하다. 출처= 구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에서 판매되는 오레오 과자는 비닐포장을 한번만 제거하면 바로 먹을 수 있다. 같은 과지인데도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자 과대 포장에 대한 규제는 환경부가 지난 2013년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이 규칙에 따르면 제과류의 포장 공간 비율이 20% 이하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신제품 출시 때 제과 업계가 이 규정을 지키는지 정부·지자체 검사를 의무화한 규정은 없다. 규정 위반 시 과태료를 물리도록 돼 있지만 1년에 한 두 차례 명절 포장 단속 외에 과자 과대 포장에 대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관련 법령에는 ‘포장용 완충재’ 규정을 따로 둬 사실상 제과업계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놨다. ‘제품의 부스러짐·변질 등을 방지하기 위해 공기를 주입할 시 부풀려진 부분을 포장 공간 비율에 적용하지 않는다’, ‘종이·골판지·펄프 등으로 제조된 받침 접시, 포장용 완충재를 사용한 제품은 원래 포장 공간 비율에 5%를 더한 값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사실상 기업에게 과대 포장을 허락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추종 자원순환시민센터 사무국장은 “이중, 삼중의 과도한 포장 제품에 대해 업체는 제품을 묶기 위한 용도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위법이 아니다”면서 “과대포장은 단순히 소비자 권익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2차, 3차 피해가 이어지게 되니 지구 환경까지 생각할 수 있는 성숙한 제조사와 소비자들이 만들어가는 건강한 소비사이클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과대 포장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단속은 지자체 몫이어서 어렵다”면서 “과대 포장을 줄이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할 예정이지만 제품을 일일이 단속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