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여파로 같은 마차를 타게 된 사람들이 있다. 마차에는 고위 관료와 부유한 귀족, 수녀 등이 한데 섞여 있는 상황. 그리고 이들과 함께 비곗덩어리라 불리는 매춘부가 마차에 오른다. 길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를 알아본 사람들은 그녀를 깔보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외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의 빵과 고기를 나누어 준다. 게다가 그녀의 애국심을 증명할 이야기까지 알게 되며, 마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가벼운 호감까지 갖게 된 상황.

하지만 이들에게 장애물이 닥친다. 중간 경유지인 토트가 이미 프로이센군에게 점령되어 있었던 것. 잠시 뒤, 그곳을 관리하는 장교는 엘리자베스 루세, 즉 ‘비곗덩어리’를 불러낸다. 혹시나 사고가 생길까 우려한 사람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장교에게 간 그녀는 10분이 채 안 되어 숨을 헐떡이며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물어도 그녀는 ‘여러분들과는 관계가 없다’며 대답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막연한 짐작과 그녀의 직업에 관한 기억뿐.

다음 날 아침, 토트를 떠나기 위해 마차로 간 그들은 황당한 일을 겪는다. 마차에 말이 매어져 있지도 않고, 마부 역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알아본 그들은 어제 그 프로이센 장교가 그런 지시를 내렸다는 걸 알게 된다. ‘총사령관이 허가해 준 여행인데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그러느냐’는 항의에도 되돌아오는 건 ‘안 된다’는 대답뿐이다. 분명하게 이야기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추측은 하나로 모인다. 장교는 비곗덩어리, 즉 루세와 하룻밤을 보내기 전까진 이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자, 여기서 루세와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벤담은 이런 상황에서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바로 ‘루세가 장교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 벤담에 따르면 사람의 행동은 쾌락과 고통이 지배한다. 올바른 행동이란 쾌락의 양을 늘리고 고통을 양을 줄이는 것이며, 잘못된 행동은 그 반대일 뿐이다. 때문에 우리 인생의 목적은 쾌락에 있으며,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쾌락을 누리는 것이 가장 옳은 행동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명제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역시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으로, 우리는 이런 그의 철학을 ‘공리주의’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계산하기 위한 척도로 총 7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 번째 기준인 ‘강도’는 그 행동으로 인한 쾌락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확실성’은 그 행동이 얼마나 확실하게 쾌락을 주는지를 의미하며, ‘근접성’은 쾌락을 얼마나 빨리 얻을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다산성’은 그 쾌락이 다른 쾌락을 동반할 여지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요소다. ‘지속성’은 쾌락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순수성’은 고통의 요소가 동반되지 않는지 확인하며, 마지막 ‘범위’는 쾌락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다.

굳이 이 척도를 모르더라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그의 명제 하나면 결과는 어렵지 않게 얻어낼 수 있다. 마차에 탄 사람 전체 행복의 합을 루세 한 사람의 행복만으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앞서 설명한 이야기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의 데뷔작 <비곗덩어리>의 줄거리다. 보불 전쟁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이후 많은 이들에게 ‘소수의 희생이 과연 옳은 것인가’란 물음을 던졌다. 어떤가? 만약 우리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벤담의 논리에 따라 루세에게 원치 않는 잠자리를 하도록 요구해야 하는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소설 속 마차의 동반자들은 벤담의 선택에 따랐다. 은근한 부추김과 협박으로 그녀가 장교와 잠자리를 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 사람들은 돌아온 그녀를 이렇게 대한다.

 

아무도 그 여자를 보지 않았고, 생각을 해주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자기를 희생시키고 다음에는 마치 더러운 무용지물처럼 내던져 버린 그 점잖은 파렴치한들의 경멸 속에서 빠져 죽는 듯 싶었다. (중략) 르와조 부인은 그것 보라는 듯이 소리 없이 웃고 소곤거렸다.

“부끄러운 짓을 해서 우는 게지.”

두 수녀는 먹다 남은 소시지를 종이에다 둘둘 말아 놓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