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아무리 기술의 시대지만 사람, 즉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후한 말 유비는 제갈량이라는 인재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21세기 대한민국도 인재를 귀하게 여기고, 인재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시간이다.

▲ 반도체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출처=픽사베이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으로의 인재유출을 경계하고 있으나,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글로벌 시장 전체로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인재유출의 문제를 중국과 한국의 문제로 한정하지만, 큰 틀에서 문제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월 26일(현지시각) 중국 정부와 현지 IT 기업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를 ‘사냥’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억제하기 위해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투자를 막는 등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인재들은 주로 중국 기업에 취직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상태에서 미국 인재들마저 중국 기업으로 달려간다면 ICT 전자는 물론,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보는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캐나다의 인재유출 사례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은 지난 5월 자국 인재의 유출 실태를 심층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25%가 미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컴퓨터와 엔지니어링 등 핵심 영역에서는 인재의 30%가 미국으로 떠났다. 조사를 주도했던 재커리 스파이서 수석연구원은 “경종을 울려야 한다”면서 “국가적 비용의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인재유치 전쟁에서 미국이 중국을 경계하고, 캐나다는 미국을 경계하는 순환구조다.

일본도 인재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일본 IT기업들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1억원의 초봉과 신입사원에게 비서를 붙여주는 등 파격적인 조치에 나서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0년 일본의 IT 인력 부족 규모가 총 59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만 3만명 이상을 충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은퇴한 IT 개발자를 ‘초청’하기 위해 채용 박람회까지 찾아와 인재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재의 인재유출 논란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또 다양한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순히 중국과의 문제가 아니라 초연결 생태계 시대를 맞아 모든 ICT 전자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한국만 상대적으로 느긋한 나날만 보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들어오려는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작업도 없고, 나가려는 인재를 막을 수 있는 매개체도 없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우리 인재를 모두 끌어가려고 한다’는 호들갑만 근 20년을 떠든 셈이다.

▲ MWC 상하이 2018 현장에는 화웨이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출처=화웨이

파트너로 인정, 기술의 본류 찾고 산업 구조 개선해야

글로벌 무대에서 인재유치 전쟁이 치열해지며, 한국 산업 공동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뚜렷한 대책도 없고 생각도 없다. 대안은 없을까? 업계에서는 “기술의 흐름을 인정하고 대담하게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기술도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은 산업계의 오래된 명언이다. 미국과 일본이 한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했으나 그 흐름이 2000년대부터 한국으로 왔듯이, 이제는 중국과 같은 다른 나라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꿨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대담하게 파트너로 삼아 협력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갤럭시S9 출시행사를 열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우리는 인재가 미국 애플로 가면 ‘진출’이라고 말하고 중국 화웨이로 가면 ‘유출’이라고 정의한다.

지난해 5월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중국 화웨이 본사 고문으로 이동했을 당시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은 “중국으로 핵심 인재가 유출됐다”는 표현을 썼다. 2016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중국 본토 부사장을 지냈으며, 1996년부터 2012년까지 노키아 중국 본토 영업담당 임원을 지낸 앤디 호 전 부사장이 화웨이로 갔을 때와 비슷하다.

앤디 호 전 부사장과 이상철 전 부회장이 국내 전자, 통신업계에서 가지는 위상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인재유출을 한탄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인재 유출은 맞지만, 그 전에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이 벌어지던 당시, 애플은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 전문가인 짐 머가드를 영입했다. 그는 미국 반도체 업체인 AMD에서 16년간 일하면서 부회장까지 역임했으며 반도체는 물론 개인용 컴퓨터(PC)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애플을 택하자 국내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감정싸움을 벌이던 시기였으나 짐 머가드의 애플행을 ‘진출’이라고 표현하며 삼성전자가 애플에 인재를 ‘수출하는 단계’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심지어 짐 머가드가 삼성전자와 애플의 전쟁을 불식하는 평화의 메신저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지만 한국 기업에서 일한 핵심 인력이다. 중국으로의 인재이동도 무조건 인재유출로만 보지 말고, 과감하게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이 더 이상 시장의 포식자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의 인재를 데려가는 중국 등과 협업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의 인재가 넘어가는 쪽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동등한 파트너로 삼은 후, 실제 인재유출을 막으려는 강력한 제도적인 장치가 절실하다. 반도체를 예로 들자면 메모리 반도체 집중 현상에서 벗어나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 파운드리, 후방 장비공정 전반의 경쟁력을 길러 인재를 불러들이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디스플레이도 과감하고 장기적인 투자로 미래의 트렌드를 개척, OLED 중심의 먹거리를 창출하는 것이 급선무다. 메모리 반도체와 LCD의 패권이 넘어가고 인재도 유출된다면, 시스템 반도체와 OLED를 장악해 인재를 불러들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함께 산업 구조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이지만, 최소한 산업계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벌어지는 인재유출 전쟁에서 초반 기세를 압도당했지만, 기술의 흐름에 따라 과감하게 상대를 인정하는 한편 지금이라도 정책적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