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를 치르고 성적처리도 끝나는 시기에 필자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작은 일이 있다.

 

에피소드1 (즉석 채용)

벌써 10년이 된 일이다. 어느 2년제 전문대학교 모의면접 행사에 면접관으로 초대를 받았다. 강당에서 200여명의 학생들 중 10여명을 단상에 올려 면접관 3명이 기업면접 모습 그대로 연출해 면접 관경을 보여 주는 행사로 요즘도 성행이다. 그런데 대개의 학생들이 단상에 올라가기를 꺼려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한 번 겪고 나면 상당한 압박의 경험이 실제상황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당시 예외 없이 10여명의 학생이 5명씩 단상에 올랐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당차게 잘했다. 똑똑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단연코 1등이었다.

그런데 마침 필자도 당시 중소기업 전문경영인으로 재직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갔던 터라, 행사를 마치자마자 그 학생을 찾아가 우리 회사에 입사 제의를 했다. 흔쾌히 동의해 그 까다로운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바로 ‘합격(合格)’의 기회를 주었다.

필자는 그를 3년간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었다. 일도 잘하고 실적도 좋았다. 당시 회사가 인터넷 판매를 시작할 즈음이었는데, 모두가 힘들어 피하는 자리에 두어 일을 시켜보았다. 3년 만에 30배 정도의 매출 성장을 보았다. 그런데 그 당찬 모습과 좋은 실적이 다른 직원들과의 마찰로 나타났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대전’의 어느 회사에 취직했으며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서울에서 고향 전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휴일에 집에 가기도 쉽다고 했다. 필자가 그를 회사로 데려 온 장본인이라 마음이 편치 못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가끔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지내곤 하는 정도였다.

 

에피소드2(그 이후 몇 년이 지난 시점)

필자의 처가가 전주인지라 명절 때 전주에 들렀을 때였다. 전화가 왔다. “전무님 전주 오셨으면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다고 했더니만 괜찮다고 한다. 둘이서 만나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나니,

“전무님, 같이 영화 봐요.” 그러고 나니, “전무님! 둘이 맥주 한 잔 해요.”

영화를 보고 나서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점에…

“이런!”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점입가경이다. “말해보라”고 했더니만,

“사실 고민이 많은데 전무님 말고는 의논을 못 할 것 같아요”라며 말을 연다.

다니는 회사의 회장이 그를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그때 취직한 회사가 대전에서 내로라하는 제법 큰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어 “잘 됐네”라고 축하를 하며, “그런데 뭐가 고민이지?”라고 물었다.

본인이 결혼을 하면 둘째 며느리가 되며, 그 아들을 후계자로 염두에 둔 경우인데, 둘의 나이차가 11살이라는 것과 조금 놀기 좋아하는 것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아이쿠!”라며 답을 하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 직원이 며느리가 되면 실질적인 후계자가 되든지 아니면 남편을 도와 경영을 보좌하도록 하게 한다고 짐작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말해 주었더니만 그 직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적 정서에 너무 많은 나이차가 문제였다.

아직 부모님에게 말씀도 안 드린 상황이라고 해서 “빨리 말씀을 드리고 판단을 하되, 내 생각에는 그 나이차라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고 본다. 서로에게 그리고 각자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노력하면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조언을 하고 헤어졌다.

그러고 나니 3개월여 후에 결혼한다는 소식, 2년쯤 후에는 아기도 태어났다는 소식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궁금도 하나 조심스러워 그저 짐작만 하는 편이다.

 

강단에 서는 전문가로서 가장 소망하는 일

해가 갈수록 강의시간에 눈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눈에 띄게 엉망으로 변해간다. 집중력은 논할 것도 없을 정도로 엎드려 잠자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노트북을 켜서 필기하는 것처럼 하지만 게임이나 다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 다반사다.

물론 강의를 하는 교수나 강사의 책임도 일부 있을 것이다.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 것이 ‘죄’라면 필자도 죄인이다.

학생들이 이해는 된다. 초중고 이후 대학까지도 외우는 시험만 존재하고, 손에는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는 인터넷, 훨씬 재미있는 손 안의 게임, 손 안의 드라마, 손 안의 친구 카톡….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왜냐하면 강의 시간 동안의 모습은 일상생활 모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강의 시간에 엉망임에도 취업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이후의 직장생활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낭패다.

그러기에 당장의 취업은 물론이고, 취업 이후의 업무 처리…(그저 그렇게 지내는 세월)… 정년이나 명예퇴직 이후의 90세까지 30~40년의 무의미한 장수(長壽), 그리고 가족에 대한 무책임함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국가, 민족이 아닌 당사자의 문제다.

수업시간, 강의시간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면 취업 문제는 절반은 풀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필자에게는 작은 소망이자 꿈이 있다.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대기업의 위임을 받아(추후 중견, 중소기업으로 확대) 특강시간이나 캠프, 팀 활동 등에서 눈에 띄는 학생들을 뽑아 추천을 해주면 무조건 합격시켜주는 권한이다.

필자는 장담한다. ‘척 보면 안다’는 인사쟁이로 30년 이상 살아왔다. 2시간여의 강의 시간에 앉은 모습, 자세, 도전, 집중도, 주변의 평판 등… 금방 눈에 들어온다. 뭘 그렇게 어렵게 시간과 돈을 들여 채용절차를 진행하는가?

이게 꿈이기만 할까?

 

최근에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친구가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데, 며칠 전 식사 중에 한 말이다.

선배 교수들이 정년 이후에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직함, ‘석좌교수!’ 몸담았던 학교에 한 학기에 한 과목 혹은 월 1~2차례의 특강으로 명예와 존중을 한 몸에 받는 자리.

그런데 이제 그 자리는 기피 1호라고 한다. 강의 시간에 들어가면 시작도 하기 전에 학생 절반이 엎드려 자는 모습, 강의 내용의 수용에 대한 느낌도 전혀 없는 시간.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 ‘모멸감(侮蔑感)’이 든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런 사람을 받아 일을 시키는 ‘기업은 어찌 하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