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가상통화 거래소를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가상통화 투기성 논란부터 해킹 사태까지 꾸준히 나오면서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는 중이다. 특히 해킹 논란이 심각하다. 국내에서만 야피존, 빗썸, 코인이즈, 유빗, 코인레일 등 5개 거래소에서 총 6건의 해킹 사태가 발생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

가상통화 열풍이 불며 투기성 논란이 깊어지고 거래소 해킹 사태가 벌어지며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특히 빗썸은 지난해부터 해킹을 2번이나 당하는 한편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 작전세력 논란까지 겪으며 전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꼽힌다.

자연스럽게 가상통화와 함께 거론되는 블록체인에 대한 논란도 깊어지는 중이다. 다만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도, 가상통화 거래소 해킹과 블록체인의 비전을 동일시하면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은 탈 중앙화를 전제로 하지만 가상통화 거래소는 당연히 중앙 집중형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상통화 거래소를 둘러싼 논란이 가상통화, 나아가 블록체인 전반의 비전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블록체인이 보여줄 미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 한국 블록체인 기술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블록체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은 가상통화의 구성방식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에게 가상통화는 구현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일 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통계 전문 업체 스테티스타(Statista)는 올해 블록체인 시장이 약 5억5000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2021년에는 23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 중앙화의 가치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선거를 예로 들면, 자기가 행사한 표가 선거관리위원회라는 중앙조직의 집계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투표인의 정보로 실시간 전송된다. 문화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불특정 다수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스팟성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면, 공연 기획자는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모두의 정보를 공유하게 만든다.

항만과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IBM이 머스크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의 조인트벤처를 설립한 이유다. 복잡한 물류 현장의 기록을 이해관계자가 모두 공유할 수 있다면, 세계의 항만과 물류 산업은 혁신적 변화와 만날 수 있다.

삼성SDS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지점도 물류와 블록체인의 결합이다. 삼성SDS 첼로 플랫폼을 총괄하는 장인수 상무는 지난 3월 미디어 데이를 통해 “지난해 해외 물류블록체인 컨소시엄을 주도했으며, 총 38개 회사가 참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면서 “올해는 블록체인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물류 비즈니스에 접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상무는 삼성SDS의 물류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삼진어묵의 사례를 들어 새로운 물류 비즈니스 가능성을 공개했다. 장 상무는 “원산지 조업과 연육 가공, 수출입, 어묵 생산, 유통, 판매의 전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투명화했다”면서 “소비자들은 삼진어묵의 제조부터 유통, 라스트 마일을 아우르는 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삼성SDS 홍원표 사장이 블록체인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삼성SDS

진정한 공유경제의 구현도 가능하다. 현재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이른바 공유경제 기업이라 불리는 곳들은 실상 온디맨드 기업이다.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된 플랫폼을 운영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반면 블록체인은 탈 중앙화를 중심으로 중앙 플랫폼을 걷어내고, 철저하게 분업화된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도 변한다. 지금까지 인터넷 비즈니스는 강력한 중앙 플랫폼이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는 구조지만, 블록체인은 중앙 플랫폼의 해체와 각 생태계 주체의 권한을 강력하게 보장할 수 있다.

▲ 삼성SDS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원산지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SK텔레콤이 3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협력해 블록체인 전문 플랫폼을 만드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블록체인은 탈 중앙화를 마법을 활용해 모든 생태계 객체의 수익을 보장하고, 권한을 분산시킬 수 있다.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거래 비용을 절감해 창작자의 권리를 확대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데이터 기반 음악 콘텐츠 사업도 추진하며 창작 활동 지원, 공유 인프라 구축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스팀잇의 성공, 블록체인 기반의 다양한 결제 툴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블록체인은 강력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블록체인도 종류가 있다. 비트코인을 가능하게 만든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과 프라이빗(Private), 혹은 컨소시엄(Consortium) 블록체인도 존재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누구나 분산엔진을 구동할 수 있다. 반면 프라이빗과 컨소시엄 블록체인은 허가된 콘트롤 타워와 승인된 기관 중심으로 행해지는 특성을 가진다. 다소 중앙집권형인 셈이다. 이 간극을 활용해 필요에 따라 블록체인을 산업과 연결하자는 것이 최근 가상통화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 SKT가 블록체인 기반 음원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출처=SKT

“풀어줄 필요가 있다”

정부는 가상통화 열풍이 불자 이를 투기성 자본으로 인식, 무리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가상통화 공개는 금지됐고 블록체인 기술 육성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가상통화 공개에 나선 모 기업은 “국내에서 가상통화 공개가 막힌 후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로 가고 있다”면서 “막대한 컨설팅 비용까지 제공하며 싱가포르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물론 업계에는 사기성이 짙은 가상통화 공개가 횡행하는 등 문제가 많고, 정부가 수세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판단마저 막아버리면 어떻게 하나’는 호소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블록체인은 ICT 기업의 미래가 된 지 오래다. 페이스북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전담하기 위한 조직을 신설했으며 네이버와 카카오도 블록체인 자회사를 연이어 설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의 미래가 블록체인으로 수렴된다면, 거대 ICT 기업 주도의 생태계 장악이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블록체인이 탈 중앙화를 중심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얼핏 거대 ICT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제한적으로 보이지만, 핵심 플랫폼이 없어도 생태계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기술의 형태가 변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결사회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퓨리서치가 37개국 2만4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은 94%의 성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1위에 올랐다. 인터넷 비율도 96%로 1위, 소셜 미디어 활용 인구는 69%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ICT 기술이 발전했다는 뜻이며, 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터넷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건전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도 가상통화 상장을 금지했으나, 여전히 블록체인과 관련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면서 “역기능에 대한 우려는 이해하지만, 최소한의 규제 완화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