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더위가 한 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이런 날씨에 자연스레 서늘함이 생각됩니다.

고향 찾은 길에 들른 단재기념관에서 제대로 서늘함을 경험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는

평생 동안 고개를 쳐들고, 얼굴을 씻었다고 합니다.

물이 가슴을 적셔도 개의치 않고, 평생을 지켰다고 합니다.

조국이 일제서 독립되기 전에는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나라를 빼앗은 일제를 향해 허리를 숙일 수 없다는 마음의 결기였겠지요.

서릿발 같은 그의 결기에 서늘함을 느끼며,1936년 2월

북풍이 몰아치는 여순 감옥에서 옥사한 그를 느껴봅니다.

여기 한 평생을 수행자로 살아온 분의 인생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집니다.

지난 5월에 입적한 설악산의 큰 별로 얘기되는 무산 스님 얘기입니다.

지난 40년간 신흥사와 백담사의 선원을 정비하고,

무문관이라는 교육 기관을 만들어

설악산의 선풍(禪風)을 진작한 분으로 얘기됩니다.

또 1968년 등단한 시인으로서 선(禪)의 세계를

쉬운 말로 풀어냄으로써 불교와 문학 사이 거리를

가깝게 했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내 지인 화가는 그를 국내 최고의 시인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관심 갖는 것은 불사나 문학적 성취보다

그가 평생 가져온 인생의 자세입니다.

'지난날 내가 쓴 반흘림 서체를 보니/

적당히 살아온 무슨 죄적만 같구나/

붓대를 던져버리고/

잠이나 잘 걸 그랬던가.'

'내가 쓴 서체를 보니'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평론가들은 그의 전 작품에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일관되게 깔려있다고 헌사를 합니다.

 

스님이 그러구 엄격한 성찰의 삶을 살아야 할 인생였다면,

세속에 있는 우리는 얼마나 속죄를 하며 살아야 할

인생일까라는 질문이 스스로 차올랐습니다.

그러구 생각하니 서늘해지며,

큰 숙제를 받은 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