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대표 정유업체들이 화학 사업에도 집중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지난 5월에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2조7000억원 규모의 중질유석유화학시설(HPC)을 신설 투자를 발표했다. 상업 가동이 2021년에 성공하면 기존 보유한 PX 외에도 폴리에틸렌 75만t, 폴리프로필렌 77만t 등 폴리올레핀 화학 사업군을 보유하게 된다.

GS칼텍스도 지난 2월 MFC(Mixed Feed Cracker)로의 2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결정했다. 기존 화학제품 라인업에 에틸렌 70만t, 폴리에틸렌 50만t 등 올레핀 제품군을 추가로 보강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에쓰오일도 잔사유 고도화,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정유사들이 화학 사업에 진출하는 이유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화학 사업은 정유사가 생산하는 석유 제품인 납사(나프타)를 핵심 원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정유업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로 알려져 있다.

최근 현대케미칼, GS칼텍스가 신설을 발표한 설비는 각각 HPC, MFC로, 주 원료 구성에 비율 차이만 있을 뿐(HPC: 납사 외 탈황중질유, 부생가스, LPG, MFC: 납사 외 LPG 등) 생산 제품과 주요 원료가 납사 크래커(NCC)와 거의 같다는 점에서 사실상 올레핀 중심의 전통 화학 사업에 진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납사 크래커는 납사를 분해해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전통 화학 설비다. 에틸렌, 프로필렌은 다시 유도품 설비에 투입돼 PE(폴리에틸렌)와 PP(폴리프로필렌) 등의 다양한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제품으로 전환된다.

화학 사업이 실적에 긍정 영향을 끼친 것도 정유사들이 화학 사업에 큰 투자를 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2011년 국내 정유업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경기 호황 덕에 영업이익 합산 6조9000억원의 호실적을 기록했다. 당시 순수 화학 사업(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한화토탈)은 영업이익 기준 5조를 웃도는 실적을 달성했지만 정유업 최대 호황에 가려져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후 화학 업계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유가 급락으로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국내 3사가 일제히 적자를 기록하면서다. 당시 순수 화학 사업은 약 1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외부 변수로부터 영향을 덜 받는 화학 사업의 차별적 경쟁력이 정유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LG화학, 롯데케미칼을 필두로 순수 화학 사업은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을 앞지르기까지 했다.

SK이노베이션 화학 포트폴리오 강화 ‘캐시카우 육성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SK이노베이션은 선제적 투자를 통해 국내 정유사 중 가장 큰 규모로 화학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하는 화학 포트폴리오에 역량을 집중해 실제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카우’로 육성했다.

화학 사업이 이끄는 SK이노베이션의 비정유 사업 효과는 지난 5월 발표한 1분기 실적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7116억원이었고, 그중 64.4%인 4582억원이 비정유사업에서 나왔다. 비정유사업 영업이익 중에서도 화학 사업은 2848억원을 기록해 64%의 비중을 차지했다. 전체 SK이노베이션 실적으로 봐도 이는 4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업계에서도 높은 비중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도 SK이노베이션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을 필두로 하는 화학 사업은 전체 실적의 42.6%를 차지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화학 사업이 사실상 최대 실적을 견인한 주역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의 화학 사업의 영업이익은 2014년 이후 지난 분기까지 누적 3조6000억원 정도다.

 

SK종합화학은 지난 2014년 총 1조6000억원가량을 투자해 정유 중심의 SK에너지 인천 콤플렉스를 화학 설비 중심으로 탈바꿈시킨 V 프로젝트, 같은 해 JX에너지(현 JXTG)와 각각 9363억원을 투자한 UAC(울산아로마틱스)를 잇따라 출범하며 PX 생산 능력을 국내 1위, 세계 6위까지 끌어올렸다.

선제적 투자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화학 실적을 올려 온 SK종합화학은 지난해 다우사로부터 고부가 화학 제품군인 패키징(Packaging) 분야 제품인 EAA(에틸렌아클리산), PVDC(폴리염화비닐리덴) 등을 인수해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섰다.

특히 EAA 사업은 중국 시장 수요 증가율이 2020년까지 매년 7%에 이르는 고성장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PVDC로 대표되는 배리어 필름도 진입 장벽이 높아 공급 업체가 적고, 향후 아시아 지역 수요 증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시장이다.

SK종합화학 관계자는 “기존 범용 제품 라인업에서 추가로 패키징, 오토모티브 화학 제품군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낙점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새로운 수익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