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과거 전문가들이 상권을 분석할 때 중요하게 여긴 요소는 지하철역에서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는 역세권이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소비거점이 얼마나 가까운지가 중요 요소로 떠올랐다. 생활패턴,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소비문화가 등장한 것이다. 20~30대 젊은 층 1인 가구 증가와 40대 여성을 중심으로 한 동네 커뮤니티 활성화가 이유로 꼽힌다.

이를 보여주는 표현들이 바로 ‘편세권’, ‘스세권’, ‘맥세권’이다. 편의점, 스타벅스, 맥도날드에 역세권을 합성한 신조어다. 최근 여기에 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국내 헬스앤뷰티(H&B) 스토어 ‘올리브영’과 역세권을 합성한 ‘올세권’도 더해졌다. 최근 거리의 유통매장에서 식료품을 비롯해 생필품을 구매하는 트렌드가 점차 강해지면서 H&B 스토어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주변 임대료에 영향을 주는 대형마트·쇼핑몰은 옛말이 됐다.

 

‘영포티’의 등장

최근에는 젊은 40대라 불리는 ‘영포티’가 트렌드와 가성비가 강점인 H&B스토어를 이용하면서 새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 5일까지 운영한 올해 첫 세일기간의 소비 동향을 집계한 결과 40대 이상 여성의 매출이 지난해 동기간 대비 64% 증가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들은 1990년대 초반 ‘X세대’ 유행을 불러일으킨 주역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것은 물론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로 적은 비용으로 높은 가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건강·미용 제품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 H&B스토어 시장 점유 분포를 보면 올리브영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각사

이 모 (43·여) 씨는 “평소 집에서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H&B스토어를 자주 이용하는데 아무래도 올리브영이 매장이 많다 보니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면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살 수 없는 다이어트 보조식품, 비타민 같은 건강기능식품이나 수입과자, 생활용품 등이 많아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 씨는 “화장품도 낮은 가격에 품질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젊은 세대 못지않게 외모를 가꾸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40대 여성의 구매 비중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면서 “올리브영이 문을 연 지 18년이 됐고, 당시 ‘X세대’를 이끈 20대 고객들이 올리브영과 함께 나이가 들며 40대 고객으로 유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40대 여성 고객들은 동네 중심의 소비가 특징으로 이와 맞물려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접점이 좋은 H&B스토어가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뷰티숍과 편의점 사이

CJ올리브영은 국내 최초 H&B 스토어다. 1999년 CJ제일제당의 한 사업부로 시작했다. 1990년대 유럽과 미국 등에서 ‘드러그스토어(Drug Store)’의 성공사례를 보고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전폭적인 투자를 강행하며 들여왔다. 국내 의약품 판매규제로 의약품은 제외하고 화장품에 집중하면서 지금의 H&B 모델이 만들어졌다.

당시 드러그스토어 개념이 생소해 실패를 예측하는 시각이 많았다. GS리테일의 ‘왓슨스(현 랄라블라)’가 2004년 국내 시장에 진출했지만 올리브영과 왓슨스의 전국 매장은 모두 합쳐 100여개에 불과할 정도로 성장이 더뎠다.

▲ 올리브영 매장은 꾸준히 증가를 보이며 특히 2011년에서 2015년 사이 그리고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큰 폭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 출처= 올리브영
▲ 올리브영은 꾸준한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출처= 올리브영

올리브영의 성장은 사업 시작 10여년 후인 2008년부터 이뤄졌다. 허민호 올리브영 대표가 영입된 직후였다. 허 대표는 198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담당을 시작으로 2001년 동화면세점 영업·구매 담당을 역임한 베테랑이다.

허 대표는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중소기업·해외 브랜드 화장품을 누구보다 발 빠르게 들여오는 동시에 매장 늘리기에 주력했다. 2008년 전국 57개인 올리브영 매장은 2011년 152개, 2015년 552개, 지난해 기준 1010개까지 늘어나며 독보적 업계 1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H&B업계는 ‘1강 2약 체제’로 후발주자 랄라블라(GS리테일, 191곳), 롭스(롯데, 100곳) 등이 있지만 두 브랜드 매장의 총합은 291개다. 이와 함께 매출이 상승하는 건 당연했다. 2014년 5800억원, 2015년 7603억원, 2016년 1조1270억원, 지난해 1조4280억원으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허 대표는 2011년 올리브영 가맹사업을 시작하면서 모든 가맹점주와 예비 가맹점주들을 만났다. 허 대표는 상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강조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20~30대 여성들의 약속 장소는 올리브영 옆에 있는 스타벅스가 아닌 올리브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 올리브영은 화장품 외에도 건강기능식품과 식품 카테고리를 강화해 종합생활유통채널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리브영이 뷰티로드숍, 편의점, 약국과 제품이 겹치면서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올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게 됐다.

대학생인 연소을(26·여) 씨는 “친구들과 만날 때 보통 카페보다는 올리브영에서 만난다”면서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면 핸드폰만 보고 지루함을 느끼지만 H&B스토어에는 윈도우쇼핑도 할 수 있고 필요한 화장품이나 생필품도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연 씨는 “H&B스토어는 식사대용식이나 슬리밍 관련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바쁜 직장인이나 여대생들에게 인기가 많다”면서 “체중감량이나 건강식 목적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대량으로 구매하기보다는 매 끼니마다 매장에서 사먹을 수 있어 편하다”고 덧붙였다.

GS25 편의점과 H&B스토어 랄라블라를 운영하는 GS리테일 관계자는 “H&B스토어와 편의점의 제품군이 겹치지만 다루는 상품이 다르고 소비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업종 간의 경쟁은 없다”고 일축했다.

 

동 2곳마다 올리브영 매장 1곳

올리브영 매장은 전국 1137곳으로 지하철역 951개보다 많은 숫자다. 행정단위 ‘동(洞)’이 2090곳인 점을 감안하면 두 동마다 올리브영 1개가 있는 셈이다. 올리브영은 ‘스세권’이라는 스타벅스 매장(1100곳)도 넘어섰다. 올리브영은 20~30대 여성이 주고객이다. 스타벅스 주 고객층이 같아 입지가 겹치는 일이 많다. ‘스타벅스 옆 올리브영’이라는 말도 곧 ‘올리브영 옆 스타벅스’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리브영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3년에서 5년 안에 올리브영은 순이익 측면에서 연매출 16조에 이르는 CJ제일제당의 순이익 수준으로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올리브영은 지역별 상권분석을 통해 맞춤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출처= 올리브영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대표는 “올리브영, 스타벅스 등과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은 입지가 좋은 곳에 들어온다”면서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 때문에 상권이 살아난다기보다는 워낙 상징성이 크다 보니 상권의 오름폭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과거 역세권에서 골목상권으로 점점 상권이 작아지다 현재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하고 있다”면서 “이는 소비자들의 소비거점이 주거지 근처로 변화하면서 이와 맞물려 앞으로도 이 같은 현상은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