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스타벅스, 맥도날드, 편의점과 같은 앵커스토어(Anchor Store)에 역세권을 합성한 신조어 ‘스세권, 맥세권, 편세권’이 등장했다. 앵커스토어는 특정 상권을 대표하거나 대형 상가의 핵심이 되는 유명 점포를 말한다. 소비거점이 생활패턴이나 사회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소비문화로 함께 등장한 것이다. 최근 생필품 구매 등 일상 소비활동에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소비자들이 사는 집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홈어라운드(Home-Around) 소비 현상’이다.

홈어라운드 소비의 배경은 가구 소형화와 인구 고령화가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1~2인 가구는 전체의 절반 이상인 53%를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의 인구도 13.8% 정도로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1~2인 가구의 급증, 고령화 사회는 곧 물품을 대량으로 구매할 필요가 없고 운반이나 접근성 등을 중시하며, 가까운 거리의 장보기나 물품구매를 선호하는 소비층의 증가와 직결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의 가구원수별 가구 구성을 보면, 전체 가구에서 1~2인 가구가 53%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출처= 통계청

최근 온라인 쇼핑과 배달음식 시장의 규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온라인 쇼핑 규모는 지난해 약 36조원, 배달음식 시장 규모는 약 12조원으로 커졌다. 매일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활용품 구매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특정 매장을 방문하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고 온라인 구매를 선택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 신한카드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소비 거리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다. 주요 생필품 구매처는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을 대상으로 소비자의 집과 주로 이용하는 매장의 거리를 측정해봤다. 그 결과 자동차 없이도 갈 수 있는 집 주변 500m 이내의 매장 이용 비중이 2014년 전체 37%에서 지난해 8%포인트 증가하며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500m 이내의 매장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멀리 있는 대형마트보다 가까운 거리의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을 선호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각 업종 내에서도 먼 거리보다 가까운 거리를 선호하는 현상은 두드러진다.

▲ 신한카드에 따르면, 2014년 대비 지난해 집 주변 500m 이내 매장 이용 비중이 증가하면서 소비거리가 좁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출처= 신한카드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인 신한트렌디스가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신한카드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 집 주변 500m 이내에서 결제한 비중이 45%로 절반에 육박했다. 이는 2014년에 조사한 결과보다 8%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홈어라운드 소비의 진면모다.

▲ 집 주변 500m 이내 매장 이용자는 50대와 60대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신한카드
▲ 집 주변 500m 이내 매장 이용자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20~30대 보다는 40~50대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신한카드

일상 소비에서 구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구매 빈도의 변화다. 생필품 구매처 이용 고객들의 최근 3년간 월평균 이용건수는 28% 증가했다. 반면 건강 이용금액은 16% 감소했다. 소량 다빈도 구매의 대표 업종인 편의점을 제외해도 이용건수는 증가하고 건당 이용금액은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량으로 자주 구매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이 다양한 이슈들로 안전과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면서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은 필요할 때 먹을 만큼만 구매하는 게 안전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에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서라도 가까운 매장에서 자주 방문하는 소비패턴이 선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2015년 대비 지난해 소셜에서 안전과 신선도의 언급량이 각각 72%, 90% 증가하며 안전과 신선도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신한카드

이런 홈어라운드 소비는 생필품 이외에도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업종이 ‘헬스&뷰티(H&B) 스토어’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국내 오프라인 유통공룡들이 침체 혹은 부진을 겪는 사이 헬스&뷰티 스토어는 편의점에 버금갈 정도의 높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올리브영 매장이 전국 도처에 확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H&B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500억원, 2013년 6320억원이었던 H&B 시장규모는 지난해 1조7000억원 수준으로 커졌다. 성장률만 보면 연평균 15%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B 스토어는 화장품과 건강식품, 식음료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며 일종의 종합생활유통채널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최근 집 근처와 같은 동네 소비활동이 뚜렷해지면서 특정 상권에서만 이용 가능한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H&B스토어의 이용 빈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편의성·간소화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거주지 생활 반경 내에서 소비하는 문화는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일상 소비를 넘어 휴식이나 여가 등 다양한 영역까지 홈어라운드 소비패턴이 영향을 끼치며 집 근처, 동네 문화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대표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이 사라졌듯이 변화하는 소비현상을 마케팅에 적용하지 못하면 유통공룡들도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