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얼마 전 모 행사장에서 기자들이 저희 대표님에게 갑자기 몰려와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당시 정신없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기자들이 최근 민감한 이슈에 대해 계속 물은 거죠. 기자들이 예의를 차려야지 막 대놓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자에게 예의를 차리라고 하는 사람이 최근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자’와 ‘예의’라는 단어는 서로 그리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점이죠. 원래부터 기자는 예의를 갖추지 않습니다. 당연히 예의라는 단어도 기자에게는 어울리지 않겠지요.

대만의 유명 여성 저널리스트 저우위코우(周玉蔻)는 기자의 예의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은 예의에 있지 않다. 저널리스트는 질문을 제대로 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진상(진짜의 모습)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대로 질문하는 것이, 예의를 갖추면서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죠.

가끔 이렇게 말씀하는 경영자도 있습니다. “기자라면 공부 좀 하고 질문해야지.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나 해대고 말이야.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면서 내가 이 귀한 시간을 허비해야 하겠어?” 이런 불평의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답변자가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의 질문이 질문 같은 질문인지 아닌지는 답변자가 판단할 주제가 아닙니다. 물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라 답변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기자를 훈계하거나, 욕설에 꿀밤을 주거나 하는 것 등은 답변자의 자유입니다.

반면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더라도, 성심껏 자신의 핵심 메시지를 강조해 답변해 주는 것도 답변자의 선택입니다. 핵심은 그 질문에 대해 답변자가 어떻게 대응했는가뿐입니다. 답변자의 대응 방식을 질문한 기자와 주변 기자들이 그대로 보고, 독자와 시청자들이 보고 난 뒤 해당 질문이 어떤 질문이었는지는 그때 평가가 됩니다.

문제는 기자에게 예의를 따지고, 기자의 질문에 대해 질문 같은 질문이 아니라 폄하하는 답변자 태도의 근원에 있습니다. 기자가 예의 없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해당 질문이 답변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답변하기 어렵고 껄끄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 보면 답변자가 편히 답변할 수 있는 마음에 드는 질문을 하는 기자는 분명 예의 바른 기자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선진적인 경영자라면 그런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질문을 두려워했구나. 내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그 기자가 밉게 느껴지는 것이구나. 질문 주제가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하고 아픈 내용이라 내가 기자들을 피하고 악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구나. 이런 선후에 대한 분별이 먼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더 나은 준비와 대응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물론 답변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갑자기 몰려드는 기자들과 위협적인 질문을 해대는 기자들이 싫고 그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이나 조직을 대표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영자는 그런 본능과 감정을 적절히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느끼는 대로 기분대로 행해서는 자신의 조직에 큰 누가 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질문하는 기자에게 욕을 하고, 기자를 밀치고, 예의를 차리라 호통치고, 취재 카메라에 주먹을 날리고, 자신을 향한 마이크들을 밀치는 그런 모든 대응은 그대로 보도됩니다. 기사화됩니다. 그 상황에서 기업이나 조직을 대표하는 자라면 어떤 대응이 더 나은 대응이었는지 금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사전과 사후 둘 중 언제 생겨나야 하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런 깨달음이 있다면 기자에게 예의를 요구할 필요는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