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중국에 진출하라고 이야기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입니까?”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해를 맞이해 시무식을 끝내고 전사 임원들이 모인 신년하례 자리에서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새해 덕담이나 나누자고 웃는 얼굴로 모인 사람들은 갑자기 터진 사안에 입도 떼지 못하고 바닥만 바라볼 뿐이었다. 차도 마시고 테이블에 놓인 다과를 먹다가, 그 말이 나온 뒤로는 모두가 앞에 놓인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알고 보니, 중국에 사업장을 마련하고 시장 개척에 나서라는 얘기는 한두 번 나온 것이 아니라 매년 신년하례 행사 때마다 듣던 얘기였다. 사람들이 들고 나는 통에 번번이 새 희망을 나누는 신년하례 자리가 퇴색되기 일쑤였다. 두 번이나 듣게 되자, 혹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까 하고 계열사 대표를 찾아갔다.

“작년 초에도 중국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점이 어려운 것입니까?”

“사실 전사적인 지원이 있어도 진출할까 말까죠. 근데 남 얘기하듯 하시니 원.”

“예? 당연히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손 놓고 있기만 하면 어쩝니까?”

“예전에 중국에 설립한 법인이 있는데, 청산부터 하고 난 뒤에 인력이나 투자 부분이 뒤따라야 하는데, 정작 청산에 대해선 판단을 매번 미루기만 하시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비워야 새로 담을 수 있다

항상 그렇듯이 어떠한 사안에 대해 실행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 실행을 막는 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 허들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실행을 강하게 지시하는 그 사람이 쥐고 있을 때가 많다. 그릇은 하나인데 앞에서는 새 것을 채워 넣으라고 윽박지르지만, 뒤에서는 그릇을 비워내기가 아까워 주저한다.

그릇 주인인 자신이 다른 것을 넣어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비워내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가 없다. 그런데 비워내기는 아까워하면서, 새 것으로 채우지 못함을 탓하기만 하는 것이다.

그 뒤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중국 진출은커녕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신년 하례가 있을라치면 매번 언성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왜 중국 진출을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중국 시장에 물건 내다 팔았으면 벌써 부자들이 되었을 것인데, 말을 해도 하지를 않으니….’

이미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새해와 여름 즈음에 한 번씩 높은 언성으로 질타하는 말에 익숙하게 고개만 숙일 뿐, 중국 진출은 생각지도 않는다. 말로만 중국 사업이니 진출이니 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무언가를 투자하거나 행동을 취할 생각은 전혀 없는 CEO와 이를 너무 잘 아는 사람들끼리 펼치는 벌이는 상황극이다.

최근 지인과 저녁 식사자리에서였다. 이직한 지 일 년쯤 되는 그는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지인이 임원으로 있는 그 회사의 대표는 겉으로는 회사 일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매사에 감 놔라 배추 놔라 하며 원격 지시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그럭저럭 견딜 만 한데, 그보다 더한 것은 임원들에게만 아니라 팀장이나 심지어 팀원들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최근 모 경제지에 신입사원이 대규모 수주 계약을 따낸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기사 내용은 입사한 지 이제 5개월이 된 신입사원이 미국의 친환경 위생용품 전문기업 제품을 국내에 독점 공급 및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신입사원은 대학은 국내에서 공부를 했지만 고등학교와 석사과정을 해외에서 마쳤고, 해외 수입품을 취급하는 국내 기업에서 일한 적도 있는 준비된 인재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는 그 기사를 메시지로 보내왔고, ‘우리 회사도 이런 인재가 나올 수 있도록 발굴하고 양성해달라’는 당부까지 해왔다고 한다. 이를 받아본 지인은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임원으로 있는 지인조차도 어떠한 일을 하든 간섭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데, 신입 사원이 일을 주도적으로 대범하게 처리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는 말 그대로 어불성설인 셈이었다.

아마존이 언론에 거론되면 아마존 관련 기사들을 메시지로 보내면서 ‘우리 회사도 아마존처럼 되어야 하니, 아마존 식의 경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고, 에어비앤비의 기사를 보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방탄소년단이 해외 음악 차트에서 인기를 끌자 방탄소년단의 기사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주말에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 소리는 더욱 긴장을 유발시킨다고 했다. 주말 오전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나, 운동이나 등산에 열중하고 있을 때 문득 문득 울리는 휴대폰 소리는 기분을 잡쳐버리기 일쑤라고 했다. 사실 그런 메시지는 받아도 어떻게 할 수도 없기에 받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지만, 메시지를 받고 나면 괜히 씁쓸한 기분만 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애플에서는 하거나 하지 말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지, 그냥 한번 해보겠다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어쩐지 예전과 같지 않은 느낌의 포스트 스티브 잡스 체제에서 아직 그 정신이 유지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전 애플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스티브가 말하는 애플의 목표는 돈 버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좋은 제품, 정말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는 신념을 공유했다. 그때 나온 것들이 아이팟, 아이폰, 태블릿이다. 그런 제품이 시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한 입 베어 문 사과 마크만으로도 사람들의 충성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나게 투자되는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브랜드보다 더 값비싼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부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도 엄청난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사실 누구도 아이무비의 샘플을 녹음하기 위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내라면 어느 기업이 샘플 녹음에 그런 대규모의 비용을 쓰라고 할 수 있을까?

성공한 기업이나 사람들을 눈여겨보면, 공통적으로 그들은 실패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전혀 실패를 하지 않고 성공을 거둔 사람이나 기업은 있을 수 없다. 실패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봤다는 뜻과 같다. 이것이 중요하다. 무엇이든 실제로 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

실행은 전혀 하지도 않으면서 중국에 진출하라는 둥, 아마존이 되라는 둥, 자신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장기판에 훈수 두듯 한다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을 오늘 또 하면서,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경우도 없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이 탁월함에 이르는 길이며, 최고가 되는 성공의 길이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탁월해지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씨 뿌려 투자할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열매 따먹을 생각만 하거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생각도 못하는 팀에게 우승부터 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거창하고 멋진 문구의 비전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실행을 잘게 나눠서, 작은 실행부터 차근차근 쌓아 나가야 한다.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둔 시점에 강한 자신감과 실행력이 발휘된다. 무언가를 추구하며 강한 실행을 해나갈 때에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낀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세상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잘 되는 회사만 쳐다보고 따라 하면 잘 되겠거니 생각하거나, 중국 진출하라고 소리만 높인다고 시장이 알아서 찾아올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