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 A변호사는 2016. 11. B씨로부터 형사사건의 변호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본보수를 3,580만원으로 하되, 이 가운데 절반인 1,790만원은 ‘계약금’으로, 나머지 절반인 1,790원은 ‘잔금’으로 이 사건 위임사무 종료 시, 즉 판결 선고시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B씨는 판결 후 A변호사에게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A변호사와 B씨 사이의 ‘잔금’지급 약정은 사실상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금지한 ‘성공보수’약정과 다를 바 없어 B씨로서는 A변호사에게 ‘잔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B씨가 ‘잔금’지급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A변호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잔금’을 받아내기 위한 소송을 B씨를 상대로 제기하였으나, 지난 7일 A변호사는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위임할 때 지급하게 되는 ‘변호사 보수’는 크게 착수보수와 성공보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위임계약이라는 속성대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건을 잘 수행해 달라는 의미로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것이 착수보수라면, 의뢰인이 소송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를 정해 놓고 소송수행 결과 변호사가 그에 부합하는 성과를 거둔 경우 이를 ‘성공’이라 칭하며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인센티브’가 성공보수에 해당한다. 이 같은 변호사 보수 체계에 대하여 명문으로 규정한 바는 없지만, 그 동안 변호사 업계에서는 관례로 받아들여졌고,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들 역시 이에 대하여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적어도 2015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건을 맡기며 착수보수를 지급하고 소송의 결과에 따라 성공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2015. 7. 23.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5다200111)은 이 같은 변호사업계의 ‘상식’을 단번에 깨뜨렸다. 대법원은 “변호사가 위임사무 처리의 대가로 받는 보수는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자유로운 합의로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형사사건에 관해 체결된 성공보수 약정은 여러 사회적 폐단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수사·재판의 결과를 금전적인 대가와 결부시켜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할 수 있고, 의뢰인과 일반 국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 형사사건에 관하여 체결된 성공보수 약정은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해당 판결 이후 체결되는 변호사 위임계약, 특히 형사사건에 대한 성공보수 약정에 대해서도 앞으로는 무효로 보겠다는 판시도 했다.

졸지에 수십 년 간 관행처럼 인정되어 온 ‘형사사건에 대한 성공보수청구권’이 사라진 변호사업계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이른바 ‘타임차지(Time charge)’로 일컬어지는 순수시간제 보수약정, 변호사가 사건을 위임받아 진행하는 동안 수행하는 업무별로 금액을 매긴 항목별 합산(가산)제, 시기별로 금액 지급시기를 정한 분할 보수약정 등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금지한 ‘성공보수’라는 표현은 쓰지 않더라도 사실상 ‘성공보수’를 지급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표준약정서를 연구하여 회원들에게 배포한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에서도 A변호사는 위임사무를 종료한 시점에서 ‘잔금’을 받도록 한 분할 보수약정 형태의 형사사건위임계약서를 이용하였는데, 이는 적어도 변호사업계 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 해당 재판부는 “A변호사는 잔금이라는 표현을 써서 성공보수약정 무효판결을 회피하려 하였지만, A변호사가 진정으로 잔금을 받기로 했다면 판결 선고 전에 지급받는 것으로 약정했어야 하고, 선고 결과를 보고 지급하기로 한 경우는 명칭과 규정 여하를 불문하고 모두 성공보수 약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결국은 변호사업계가 사용하고 있는 ‘분할 보수약정서’는 무효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3년 전 대법원의 ‘형사변호사 성공보수 약정 무효’판결을 재확인한 것을 넘어 변호사업계가 대안으로 마련한 ‘분할 보수약정서’ 역시 같은 취지로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물론 앞으로 항소심 절차가 남은 만큼 이 같은 결과가 뒤집힐지는 아직 알 수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의 형사변호사 사건위임계약서 즉, 순수시간제 보수약정, 항목별 합산(가산)제 보수약정에 대해서는 법원이 아직 명시적으로 무효 판단을 내린바가 없어 대안적 사건위임계약서로 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 8. 12.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2015헌마784)도 제기하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상의 내용은 ‘형사 사건에 관한 성공보수약정’에 한정된 것이고, ‘무효’라는 의미 역시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성공보수를 청구할 수 없다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어서, ‘민사사건’에 관한 성공보수약정은 금지되고 있지 않으며, 형사사건의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자발적으로 성공보수를 지급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