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사결과에 대한 후속조치에 관하여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에 대하여 직접적인 형사고발이나 수사의뢰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미 이루어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하여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 자료를 제공하는 등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법원 내부적으로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법관 13명도 징계절차에 회부해 관여 정도와 담당 업무의 특정에 따라 징계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재판업무에서 배제하기로 하였다.

지난 달 31일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하여 의견을 수렴해 형사조치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지 2주 만의 일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에 관한 도움을 받기 위해 청와대와 재판 관련 거래를 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였다는 등의 ‘사법행정권남용 의혹’은 없었다며 해명하고 나섰지만, 법원 안팎으로 나빠진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고심을 거듭하던 김 대법원장은 마침내 지난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결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는 필요하지만, 대법원장이 직접 고발을 하거나 검찰에 수사 촉구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이미 이번 사태와 관련한 20여 건의 고발장을 접수받은 검찰은 사법부로부터의 구체적인 입장표명이 있을 때까지는 수사를 보류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김 대법원장의 이번 담화발표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명분이 생겼다. 검찰은 아직 구체적인 수사계획을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김 대법원장이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약속한 만큼 미공개 문건 200여 건을 포함해 조사 과정에서 확보된 모든 자료를 요청하는 것으로부터 수사의 단서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검찰의 수사, 더 나아가 실제로 혐의가 밝혀질 경우 진행될 재판 과정이 순조로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은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형사처벌이 ‘법리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책은 ‘직권남용죄(형법 제123조)’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성립되는 범죄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진보적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 하였다는 등의 책임을 물어 직권남용죄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반대의 입장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판사 동향은 감시했으나, 실제로 인사 상 불이익이 없었고, 판결에 영향을 준 사례가 없다며 혐의 인정이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법원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특별조사단 보고서에서도 직권남용죄가 적용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조치를 보류한 바 있다. 물론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직권남용의 인정 범위가 확대된 측면이 있고, 최근 검찰이 직권남용 고발 건의 급증으로 구체적 판단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별도의 책자까지 마련하는 등 변화도 발견되고 있어 실제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수사선상에 오를 경우 어떠한 결말로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한편으로는 법원 내부의 반발을 어떻게 잠재우고, 수사과정에서 검찰과 빚어질 마찰을 어떻게 극복하고, 기소 후 재판이 이루어진다면 누가 재판을 맡아 진행할 것인가도 ‘실제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어려움이다. 당장은 김 대법원장의 15일 대국민 담화 발표 직후 13명의 현직 대법관들이 ‘재판 거래 의혹은 없었다.’는 별도의 성명을 발표한 만큼 김 대법원장은 그들부터 설득을 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또한 검찰이 영장을 발부해 법관 집무실을 압수수색하거나 전현직 법관에 대한 인신구속을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사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법원과 검찰 간의 갈등 역시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관련자들이 기소된다 하더라도 누가 전현직 상사, 동료였던 자들의 재판을 맡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지, 만약 그렇게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그에 대하여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만 남았다.

사법부는 과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질적인 사법불신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지, 오히려 사법불신의 높은 벽만 실감하게 될지 지켜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