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 영상 제작 기법인 ‘애니메이션’은 그 무한한 표현 기법 덕분에 인간의 상상력을 눈앞에 펼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특히 실사 촬영 기법과 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한 3D 애니메이션 기법이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면서, 예전에는 실사영화에서 구현하기 힘든 스토리와 연출을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빌려서 마치 실제로 있을 법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감독들은 일반적인 삶 속에서의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더욱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 장벽도 점점 낮아짐에 따라 이제는 영화는 물론 CF, 드라마 등에서도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칼럼은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 이유는 애니메이션氏와 기술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모두들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첨단 기법은 당연히 여러 가지 기술이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인 2D 애니메이션 기법에도 만만치 않게 여러 가지 기술이 사용됩니다. 그것들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2D이든 3D이든 가장 핵심은 바로 ‘정지한 이미지를 움직이게 하는 원리’로서 ‘잔상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 ‘잔상 효과’ 덕분에 애니메이션氏는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고 또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를 함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간단합니다. 조금씩 다른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다들 아는 내용이지요? 아마 어린 시절 한 번쯤 책 한 귀퉁이에 연속된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넘겨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재미있어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손으로 직접 움직여 그림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플립북’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조트로프라는 장치로 발전하고 1877년 프랑스의 레이노가 만든 프락시노스코프에서 그림이 연결된 ‘스트립(띠)’을 거울을 이용해서 스크린에 투영할 수 있게 됩니다. 에밀 레이노는 이 기법을 이용해 1888년 ‘한 잔의 맥주’라는 잔상효과를 이용한 움직이는 그림을 상영했는데, 약간의 학문적 견해 차이는 있지만 이 작품을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레이노는 이후 ‘레이노의 시각극장’이라는 타이틀로 애니메이션작품을 계속 발표했고 유럽 전역을 다니며 상영해서 많은 이득도 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1895년 르미에르 형제가 만든 시네마토그래프로 최초의 영화상영이 성공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 영화를 상영한 르미에르 형제도 영화는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편집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필름 1롤이 끝날 때까지 촬영한 영상을 그냥 다시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거든요. 그렇지만 1903년 에디슨의 직원이었던 에디윈 포터가 <미국인 소방수의 생활>에서 불이 난 집과 출동하는 소방수를 교차로 보여주는 최초의 편집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르미에르 형제가 영화 상영에 사용한 롤필름과 레이노가 시각극장에서 사용한 스트립은 외형상 같은 형태입니다. 하지만 필름은 촬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반면 스트립은 직접 한 장 한 장 그려야 했기에 완성 속도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애니메이션 기법이 먼저 완성되었음에도 촬영 기법에 밀려난 이유입니다. 그러면 직원이 최초의 편집영화를 만들었는데 사장인 발명왕 에디슨은 당시 뭘 하고 있었을까요? 에디슨은 최초의 가정용 롤필름을 만들어 전 세계 사진왕국으로 군림했던 ‘코닥’의 조지 이스트먼과 함께 영화 촬영용 롤필름을 개발해서 레이노의 시각극장에서 한 잔의 맥주가 처음 상영되던 1888년에 키네코그래프라는 촬영전용 장치를 개발했고, 이듬해 1889년에는 촬영필름을 보는 전용 장치인 키네토스코프를 완성했습니다. 에디슨과 이스트먼이 같이 개발한 영화촬영용 롤필름이 없었다면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영화상영이라는 타이틀은 나올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럼 여기서 다들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왜 에디슨은 최초의 영화상영 타이틀을 얻지 못하고 뤼미에르 형제에게 빼앗긴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왜 필자는 애니메이션 기법이 아닌 촬영 기법의 영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왜냐하면 보이는 이미지가 사진인지 그림인지 차이는 있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잔상효과’는 같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레이노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상영한 ‘한 잔의 맥주’는 왜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요? 이 모든 이유를 설명하자니 글을 쓸 공간이 부족하군요. 이렇듯 애니메이션氏가 태어날 당시의 시대상황은 여러 분야에서 현대화를 향한 첫 발을 내딛던 시기라 많이 복잡했답니다. 다음 칼럼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들과 함께 무럭무럭 성장하는 애니메이션氏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