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인문/예술 학습 서비스 '토톨로지' 이준형 대표 ]초등학교 4학년 혹은 5학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짝꿍에게 들었던 꽤나 의미심장한 질문을 요즘 다시 되새긴다. “넌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친구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 이유까진 잘 떠오르지 않지만, 질문 이후의 대화는 대략 이랬다. “난 남자.” “왜?” “글쎄, 그냥 우리나라에서는 남자가 할 수 있는 게 더 많은 것 같거든. 그럼 너는?” “나도 남자.” “왜?” “넌 아마 모르겠지만 여자로 태어나면 집이랑 학교에서 해야 하는 것도, 불편한 것도 엄청 많아.”

그날의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건 얼마 전 나온 책 <학교에 페미니즘을>을 읽은 뒤부터다. 책의 공저자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이신애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종종 간단한 게임을 한다. 게임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아이들에게 같은 수의 바둑알을 나누어준다.

2. 랜덤 추첨을 통해 몇몇 학생에게만 바둑알을 두 배로 준다.

3. 운으로 결정되는 게임을 하고, 지는 아이가 이기는 아이에게 바둑알을 준다.

4. 둘 중 한 명이 바둑알을 모두 빼앗기면 게임 끝.

 

자, 어떤가? 과연 이 게임이 공평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바둑알을 적게 받은 아이들은 간혹 운이 아주 좋은 날을 제외하곤 훨씬 많은 바둑알을 가진 친구를 이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린 이런 상황을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20세기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불공평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했다. 우선 롤스는 한 가지 상상을 제안한다. ‘무지의 베일’이라는 이름의 상상에 따르면, 우린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의식과 능력은 있지만 어떤 환경에서 태어날지 알 수 없다.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날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날지, 어떤 이웃들과 살게 될지, 사는 지역의 학교와 병원의 상태는 어떨지 등 미래에 관한 정보는 일체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이 상황에서 우린 추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는 재벌가 혹은 강남 8학군의 부잣집 아이로 태어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기초생활수급을 통해 겨우 삶을 이어가는 홀어머니 아래 태어날 수도 있다. 과연 이런 추첨에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다시 <학교에 페미니즘을> 속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바둑알을 적게 받은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불평등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교탁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게임이 왜 공정하지 못한지를 설명한다. 바둑알을 고작 3개만 받은 입장에서 6개나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 친구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며 말이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물론 처음부터 바둑알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그건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운 좋게 6알을 받은 친구가 적게 받은 친구에게 자신의 바둑알을 나누어 주도록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이런 규칙이라면 게임이 시작된 뒤에도 불평등을 개선할 기회는 충분할 것이다.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불평등한 조건 아래 교육받지 않도록 하는 것, 지역과 빈부에 관계없이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여자 혹은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기회를 덜 받거나 더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말이다.

그런 사회라면, 어린 시절 그 친구의 질문에 우리 모두 조금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