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로 망한 조직 한비자로 살린다> 모리야 아쓰시 지음, 하진수 옮김, 시그마북스 펴냄.

일본 아베 총리가 연루된 스캔들 뉴스에는 종종 ‘손타쿠(忖度, 촌탁)’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뜻이다. 윗사람이 구체적인 요구나 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아랫사람이 스스로 헤아려 수행하는 것인 만큼 일이 잘 풀리면 윗사람으로부터 보상을 받게 되고, 탈이 생기면 전적으로 아랫사람이 책임지는 것으로 사건이 종료된다. 우두머리를 정점으로 하는 ‘조직 명예’를 지킨다며 아랫사람만 희생시키는 전형적인 ‘인치(人治)형’ 조직문화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이 책에 소개돼 있다. 패전 직후 전범재판이다. 당시 지휘관이 항복명령을 내려놓고도 군법회의를 통해 부하들에게 총살형을 내리고 자신은 면피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저자는 이외에도 여러 불합리한 조직문화가 오늘날 일본 기업들에도 만연해 있다고 지적한다. 그 배경에는 에도시대 이후 널리 읽힌 <논어>의 영향이 크며, 성과주의 시스템 조직관이 반영된 <한비자>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책에는 우리가 알아둬야 할 인물이 나온다. 중국 춘추시대 명재상 자산(子産, BC 580년 출생 추정~BC 522년 사망)이다. BC 547년 약소국 정나라의 재상에 오른 자산은 BC 536년 중국 최초의 성문법을 만들었다. 그는 형법 제정 후 귀족들이 함부로 수정하지 못하도록 철로 만든 대형 솥 ‘형정(刑鼎)’에 법률 조문들을 새겨 전국에 보급했다. 법을 근간으로 온갖 권력형 부정부패와 정치문란, 무법천지였던 정나라를 개혁하려 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등장한 ‘매우 낯선’ 자산의 통치방식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백성들은 자산을 저주하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를 정도였다. 뜨거운 인치-법치 논쟁도 촉발돼 춘추시대, 전국시대를 관통하며 공자(BC 551~479년)를 비롯 진나라의 정치가 숙향(생몰 미상), 한나라 사상가 한비자(BC 280~233년) 등 기라성 같은 사상가들의 논쟁으로 확대됐다.

가장 먼저 공개 비판에 나선 것은 진나라의 현자로 불리던 숙향이었다. 공자의 추종자 숙향은 남의 나라 재상인 자산에게 비판 서신을 보냈다. “당신은 나라의 재상으로서 법률을 제정해 형서를 주조했습니다. 이래서는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법률이라는 이름의 말세입니다. 그런 것을 만들면 앞으로 백성은 소송을 일으켜 싸울 테고, 오히려 뇌물이 횡행할 것입니다.”

자산이 답장을 보냈다.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각별한 재능이 없는 저는 먼 장래의 일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현존하는 혼란을 잠재우는 것을 염두에 둘 뿐입니다.”

자산이 재상으로 재임한 20여년 새 어린아이들이 밭갈이 등 중노동에 동원되지 않게 되었고, 시장에서 물건값을 속이는 일이 없어졌으며, 도둑이 사라져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괜찮았다. 개혁이 뿌리내리면서 진(晉)과 초(楚)라는 양대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 정나라는 강소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자산은 죽기 전 심복 지대숙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네. 엄격한 정치와 관대한 정치일세. 불이 활활 타오르면 백성들은 겁을 먹게 되지만, 불에 타 죽는 사람은 아주 적네. 물은 성질이 부드러워 백성들이 겁을 내지 않지. 그래서 물로 인해 죽는 사람이 많은 것이야. 관대한 정치는 바로 물과 같은 것이네.”

책의 저자는 일본 기업 경영에 잔존해 있는 ‘관대한 정치’라는 인치의 한계를 지적한다. 덕이 높은 인물이 흔하지 않으며, 덕을 지닌 인물조차 변절해버리는 일이 잦다고 말한다. ‘스미모토 은행의 천황’으로 불리며 13년간 은행을 이끌던 이소다 이치로 총재도 일본 전후 최대 부정경리사건으로 꼽히는 종합상사 이토만 관련 배임사건으로 불명예 퇴임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저자가 피도 눈물도 없는 법치와 시스템관리를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자산의 법치도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한편 공자는 자산이 남긴 말을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게 관대하면 백성들이 게을러져 통치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격한 법으로 다스리면 상처를 내기 쉬워 다시 관대함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강경과 온건을 함께 구사하여 서로 보완하도록 해야만 정책이 통하고 인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