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서울 시내 상가의 흥망성쇠는 임대료가 웅변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시내 상업용 부동산(오피스, 중대형·소규모·집합 상가) 중 중대형 상가의 1분기 임대료가 전분기 대비 하락했다. 같은 기간 오피스는 변동이 없었고 소규모·집합 상가는 소폭 상승했다.

중대형 상가 임대료 하락을 주도한 지역은 강남, 그중에서도 신사역 상권이었다. 올해 1분기 임대료는 평당(3.3㎡) 7만5700원으로 전분기 8만6500원에서 크게 낮아졌다.

신사역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지난해 2분기 평당 8만5400원에서 3분기 8만5800원으로 올랐다. 이 기간 동안 공실률은 6.9%에서 12.8%로 크게 올랐다. 올해 1분기 임대료가 낮아지자 7.8%로 낮아졌다.

이 지역 소규모 상가의 올해 1분기 공실률은 16.5%로 서울 전 지역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평당 5만8100원이었던 임대료는 올해 1분기 6만8000원으로 크게 올랐다.

가로수길과 세로수길로 대변되는 이 일대 상권은 관광객과 젊은 층 유동인구 감소로 유독 타격이 컸다.

한 증권사 부동산투자 담당자는 “신사역 상권이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로데오거리는 신사역 상권과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해 소비층을 뺏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신사역 상권은 타 지역과의 경쟁이 아닌 불황에 따른 매출 감소와 높은 임대료 부담이 주 원인”이라며 “최근에는 각종 대기업 매장이 들어서면서 개성도 없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이대 상권의 쇠락 원인으로는 ‘사라진 특색’을 꼽는다. 보세·디자이너 매장을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온라인 쇼핑몰 성장과 오프라인 쇼핑몰 ‘예스APM’의 등장으로 차별성을 잃었다.

중국인 등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몰려 들자 사후 면세점업이 성행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이후 이조차 시들해졌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화장품 가게들만이 즐비한 상황이다.

몰락한 상권, 부활 가능할까

상권은 발전과 쇠퇴를 반복한다. 최근에는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특색 있는 상권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어김없이 들어선다. 기존 상권의 매력은 사라지고 상황과는 무관하게 임대료도 가파르게 오른다. 소비층은 물론 임차인도 떠나게 된다. 단연 임대인도 피해를 입는다.

그렇다면 해당 상권이 특색을 유지할 경우 몰락의 길을 걷지 않을까. 경리단길의 사례를 보면 단언하기 어렵다.

경리단길 상권은 지형적 특성상 좁은 대지면적과 고도제한 등으로 신축보다는 기존 주택의 리모델링 형태로 상권의 확장이 이뤄졌다. 대형매장보다는 소규모 매장 위주로 상권이 형성된 이유다. 일명 ‘골목길 상권’이라 불린다. 통상 상권이 풍부한 유동인구와 편리한 교통, 주차를 기반으로 이뤄진 것과는 다르다.

‘골목길 상권’이 기존 상권 형성의 틀을 깬 가장 큰 이유로는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소셜미디어 활용이 꼽힌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지도 앱’과 맞물려 공유 문화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상권 활성화로 임대료가 오르고 이에 부담을 느낀 임차인들은 가까운 지역인 해방촌 등으로 이동했다. 대규모 상권에서나 발생할 것 같았던 ‘젠트리피케이션’이 경리단길을 덮친 셈이다.

결국 상권 몰락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임대료 급상승’이 지목된다. 만약 임대료를 다시 낮춘다면 몰락한 상권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이지만 상권 활성화에 따른 임대료 재상승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업진흥지구(BID), 상권 발전과 재생 기대

국내서는 상권 침체로 골목상권 쇠퇴가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율상권법’, ‘지역상권 상생발전법’ 등이 발의됐지만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 문제가 거론됐다. 임대료 인상에 따른 임차인을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지적이다.

▲ 사진=이코노미길뷰 박재성 기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를 겪었다.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을 위해 사업진흥지구(BID, Business Improvement Districts) 운영이 활성화되고 있다.

BID는 민간주도의 제도로 특정 상권구역을 범위로 해 부동산 소유자 등이 자발적으로 분담금을 납부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들이 비영리기관을 통해 상권의 가치를 높이는 의사결정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버넌스 방식이다.

각국의 특성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정부 주도 등 형태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상권 자체를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육성하자는 것이 근간에 자리 잡고 있다. 쉽게 말해, 건물주들의 분담금을 상권 내 환경 미화, 시설 개선과 홍보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유동인구는 더욱 몰려들고 임차인들의 매출도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임대인도 임대수익 고민을 덜 수 있다. 상권 관련 이해관계자가 하나의 거대한 기업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형 쇼핑몰에 대한 영업과 입점 규제를 통해 소상공인의 영업권을 보호하고 있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주차장 등 시설개선 자금을 투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은 정책 효율성과 지속성 측면에서 늘 논쟁이 된다. 도심의 상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상권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이 필수다.

한 부동산개발사 관계자는 “BID 도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영 주체”라며 “해당 제도가 국내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이를 주도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전통시장이나 몰락한 상권을 재생하는 데 있어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이 최선은 아니다”면서 “BID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초 제도를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