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 서울시 동작구에서 10평 남짓의 국수가게를 운영하는 이 모 씨(45)는 최근 300만원을 들여 무인계산기를 설치했다. 이 씨는 “정직원을 1명 고용하면 월 170만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바쁜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 1인당 30만원의 인건비가 든다”면서 “무인계산기를 이용하면서 주문과 음식서빙과 식기반납을 셀프로 전환했더니 이전에 네 명이 한 일을 두 명이 충분히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무인계산기 도입으로 정직원 1명과 아르바이트 1명을 줄여 매달 200만원의 비용을 줄이고 국수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있었다.

줄어드는 근로시간과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으로 유통업계에 무인 주문·결제기기의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롯데리아와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업계의 무인계산기 도입 비율은 이미 올 들어 40%를 넘어섰다. 얼마 전만 해도 고객이 직접 무인기기로 주문·결제를 하는 것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대형매장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동네 골목상권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무인화의 바람이 동네상권의 자영업계에도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2016년부터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키오스크(무인 주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맥도날드는 400여곳 매장 가운데 200여곳 이상에 키오스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업계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를 도입하기도 했다. 롯데리아는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점 등 전국 1300여곳 매장 중 절발 가까이 키오스크를 설치했고, KFC도 지난해 8월부터 홍대점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맘스터치도 1130여곳 매장 중 20여곳 매장에서 도입해 사용하고 있고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 손가락을 넣으면 네일아트가 되는 네일 무인 자판기.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패스트푸드 업계를 중심으로 늘어나던 무인자동화기기 설치는 최근 들어 일반 음식점과 주유쇼, PC방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셀프주유소는 지난해 2269곳으로 2011년에 비해 무려 4배 이상 늘어났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압박이 심해지면서 무인자동화 기기를 찾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결과다.

서울시 동작구에서 3평 남짓의 카페를 혼자 운영하는 안 모 씨(33)도 무인계산기 도입으로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자영업자 중 하나다. 지난해만 해도 직원을 뒀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부담이 돼 혼자 일하게 됐다. 그러면서 그는 150만원을 들여 무인계산기를 도입했다.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저렴한 가격이 경쟁력인 가게였다. 그렇기 때문에 메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인건비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금결제보다 카드결제가 많기 때문에 고객들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안 씨는 “무인기기 가격은 90만원에서부터 수백만원까지 있어 본인이 원하는 사양의 기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서 “150만원 상당이 고가지만 아르바이트생 1명을 두 달 고용하는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안 씨의 카페에서 만난 한 손님도 “사람이 계산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이곳은 무인기기 위에 모니터로 직접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색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무인기기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업종도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주는 거의 베이비부머 은퇴자들로 50대 이상이며 70대도 있다”면서 “그런데 최저임금이 인상되니 직원을 고용하기 부담스러워 부부가 24시간 맞교대하며 운영하는 일도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얼마 전 부부가 24시간 맞교대로 운영하는 CU편의점에서 점주가 과로사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편의점은 이미 무인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지만 대기업들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정책에 반하면 패널티를 받을까 봐 도입하지 않고, CU 측도 이 같은 점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보다는 사건을 덮기 급급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제약에도 앞으로 생존을 위해 비용절감에 나서는 자영업자들의 선택에 따라 무인화 기기 도입은 대세가 되고 관련 산업과 제조업체들은 호황을 누릴 것이며 그 결과 저임금 일자리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기업 산하 외식업체 임원으로 있다가 충정로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경영하는 이 모 씨(53)는 “정형화된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무인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제원과 불필요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많아 무인화는 트렌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선의로 시작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라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 정육점에 가지 않고도 직접 원하는 고기를 구매할 수 있는 무인고기자판기. 출처= 농협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현 정부의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올해 8만4000명, 다음해 9만6000명, 2020년에는 14만4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것도 그 근인은 같다. 최저임금을 지금 속도대로 올리면 3년간 최대 32만40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다.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은 저임금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고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효과를 가진다”면서 “올해 대폭 인상에도 고용감소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2019년, 2020년에도 대폭 인상이 반복되면 최저임금은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이 그 어느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 돼 고용감소 폭이 커지고 임금질서가 교란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으므로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근재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도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속도조절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장사가 잘 된다면 임금인상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면서 “나도 25년간 식당을 운영했지만 최근에는 적자로 돌아서 이윤이 남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을 고용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