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영학 이직스쿨 대표 ]

나이를 먹어가고,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멀다고 생각했던 정치가 곧 필자의 삶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한 이후에는 정치에 영향을 줄 수는 없어도, 악영향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지기 위한 준비는 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치는 사회 또는 특별한 직책 또는 역할과 책임에 근거해 나라에서 관장하는 선출직 공무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에게도 정치는 중요하다. 조직 속 개인도 자신의 영향력의 범주 내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게 된 직책에 따른 역할과 책임이 있고, 이를 훌륭하게 쌓아감으로써 더 놓은 권한을 맡게 된다. 이를 승진 및 승급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들은 자신의 능력 및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능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피터의 원리(Peter’s Principle)에 따르면, 모든 근로자는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낼 수 있을 위치까지 승진이 가능하다고 했다.

보통은 실무자로서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담당자가 어느 날 책임자(팀장)가 된 이후에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정 개인의 리더십을 탓할 수만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남을 이끄는 리더십을 갖춘 이가 몇이나 될까. 그들의 리더십을 개발할 기회나 올바른 성장 방향성에 대해 조직에서 적절한 가이드를 해줘야 하는데, 우리 조직은 그럴 여유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요구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개인의 성과도 모자라 팀의 성과를 만들어오라고 닦달을 한다. 당연히 이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결제 라인 바로 위 아니면 그 윗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인상으로 비쳤는가가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성실함’은 기본이고, 평소에 어느 정도나 헌신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척도가 된다.

이때 많은 이들이 불합리한 평가와 보상에 상처를 입고 회사를 떠난다. 이른바 ‘성과 지향적 인재’보다 ‘성취 지향 및 개인의 영달’을 위한 인재가 조직에서 더욱 주목받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종종’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꽤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치력을 조직에서 당연시하면서 요구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비즈니스 관련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단골 주제로 나타나기까지 할까. 주인공의 강직한 성격 때문에 아부를 전혀 못 해서 승진과 승급에서 계속 물을 먹고, 그로 인해 불만을 품고 더욱 그러한 문화에 맞서 싸우거나 타협하는 이야기 말이다.

이직스쿨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도 위와 같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죄가 없다. 죄라면 일을 열심히 한 죄, 아니 일만 열심히 한 죄뿐이다. 조직 네트워크에서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고 노력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후회 아닌 후회 말이다.

이들에게 주는 솔루션은 ‘최대한 빨리 옮기는 것’ 이외에는 없다. 조직에서는 나와 함께 성장하지 않겠다고 이미 시그널을 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 말고도 대신해서 일할 사람이 많이 있으니까 다른 곳 알아봐”라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만 잘하면, 동료 및 선후배들과 큰 문제없이 지내는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조직 또는 윗사람을 대변하거나,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조직의 우선순위로부터 멀어진다는 것 말이다. 과연 출세를 위해서 어디까지 하는 것이 적당할까, 얼마나 노력해야 직장생명 연장에 도움이 될까.

정치력이 곧 능력이라는 문화를 바꾸고 싶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 번째, 순수한 능력만을 보고 존경과 대우를 하는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조직 내의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치력도 능력에 포함할 수 있다. 다만 정치력만을 앞세운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다. 만약 이런 문화를 종용한다면, 당연히 조직 안에서는 일을 하기보다는 서로 잘 보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도 조직 그리고 개인의 직장생명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그래서 유명무실해진 ‘성과 평가’ 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현재의 성과 평가 제도가 부하직원의 인성을 평가하는 수준 정도라면 원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명확한 목표 설정에 의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수시로 시장 안팎의 상황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이 성과에 의한 목표다. 당연히 성과 평가 또는 측정도 그에 맞춰서 변해야 한다. 특히 역량과 성과 평가를 형식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다수의 많은 이들을 줄 세우는 용도 이외에는 없다. 당장 폐지하고, 팀 평가 또는 제대로 된 목표에 의한 관리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 조직의 리더에 의한 적절한 권한 위임과 책임 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작은 조직이라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큰 조직이라면 말단 사원을 조직 전체 리더가 세세하게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 각자의 리더십을 배양하기 위해 업무상 균등한 기회 부여라는 원칙을 통해 권한과 책임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맡은 바 업무 내에서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기준으로 성과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유도가 필요하다.

네 번째, 성과는 크게 성공과 실패로 구분할 수 있다. 대부분 성공한 결과만을 성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실패 또한 조직에는 ‘시행착오’라는 이름으로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새로운 시도가 매번 성공할 수 없기에 다음에 더욱 나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이를 성과로서 인정해주는 것이다. 물론 보상까지는 어렵다. 대신 실패를 실패로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실패 자체에 대해 관대한 문화를 가지려는 노력을 통해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기업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개인에게 단순히 일만 잘하는 것, 그것만 조직에서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정치력은 그저 함께 일하는 동료 선후배들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당연히 이런 부분만을 보고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승진과 승급이 이루어지는 비정상적 조직을 어떤 이들이 선호하게 될까. 이런 조직은 오래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향후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조직이 건강해야 조직 속 개인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단순히 배만 불리는 식의 양적 성장만을 요구하는 조직, 그로 인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최적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조직, 이러한 조직은 건강한 개인을 만드는 데 지독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지금 몸 담고 있는 조직이 이와 같은 자정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면 당장 시작해야 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아니다. 그보다는 공은 공(公)이고, 사는 사(私)다. 이를 구분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남용하면 깨끗한 물이 될 수 없다.

저명한 경영학자 제프리 페퍼가 쓴 <권력의 경영>에서, 저자는 권력을 활용 및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권력 행사’라고 했다. 이때 적절한 타이밍과 정보분석력을 통해 일방적이 아닌 상호의존적인 원칙을 고수해야만 한다고 했다. 무리하게 조직의 원칙을 넘어서 개인의 원칙을 강요하거나 하는 등의 남용은 몸에 해롭다. 특히 우리의 직장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또한 존경은 그 사람이 앉은 자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일시적으로 잡은 지휘봉에 불과하다. 진짜 존경은 그 사람이 가진 여러 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묻어난 ‘매력 또는 능력’에 반한 이들의 억지스럽지 않은 태도다. 이를 정치라는 권력을 통해 강요하는 문화부터 거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