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외-청노루귀, 73×60㎝ 캔버스 위 유채와 아크릴혼합, 2016

“나에게는 나의 결점 고통에게는 고통의 결점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의 결점을 사랑하듯 고통이 고통을 사랑하고 고통이 고통의 결점을 사랑하듯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내일의 내일에 속고 마는 나를 오늘의 시간이여, 내가 그 사랑을 알고 있으니 마음 놓고 사랑 하소서”<오규원 詩, 고통이 고통을 사랑하듯, 문학과 지성사 刊>

인적 드문, 햇살 잘 드는 바위 뒤편. 너무나 작아 그래서 잘 눈에 띄지 않고 숨어서 피어난 듯 아아 그 꽃잎이 산들거리네. 플루티스트(Flautist)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이 연주한 글루크 곡 ‘정령의 춤’이 여린 잎에 조심스럽게 내려앉는다.

다정한 속삭임, 함께 손을 잡고 투명한 하늘위로 날아오르는 꿈을 나누는 플루트선율은 허공의 바람과 격의 없이 어울린다. ‘세상의 자태를 뽐내는 꽃들에 비해 아름답지 않다 누가 말할 수 있나’라며 나직하게 정담을 나눈다.

▲ 사마귀풀 꽃, 65×54㎝, 2016

“어느 날 한라산 서쪽자락 곶자왈 호젓한 산책로에서 꽃과 나, 단 둘이서 오랜 친구처럼 만났다. 어둠이 밀려올 때까지 우린 함께 있었다. 바람과 벗이 되고 햇살을 찬미하며 ‘나도 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피어난, 이를테면 소외된 꽃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꽃을 내 화폭의 전면에 자리매김해주고 싶었다.”

하얀 솜털을 휘날리며 피어난 담청색(淡靑色) 노루귀, 사마귀풀 꽃…. 화면은 꽃과 보색을 사용함으로써 꽃의 주목성을 동시에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화산서 분출된 현무암 주변 빨간 송이석 형태, 대지의 색채감은 물과 기름을 섞어 붓질한 후 생겨나는 작은 기포들로 감각적인 연출을 해냈다.

“꽃에는 꽃대, 암술, 꽃잎 등 아무리 쌀알만큼 작은 꽃도 나름의 법칙을 갖고 있다. 꽃 자체 모양에 있어서 그것들이 안 어울리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알맞게 배분된다. 작가적 시각으로 야생화를 존경심을 가질 만한 대상으로 보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자연계를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힐링의 교감을 나눌 수 있다.”

▲ 꽃무릇, 73×50㎝, 2016

◇우연성과 자연스러움

전홍식 작가(ARTIST JEON HONG SIK, 全弘植)는 야생화, 풍경화 등을 여러 도자기법으로 녹여낸 독자적 작업방식으로 도판화(陶板畵)한다. 특히 흰색과 검은색의 조화를 통한 깊이감, 여백 등을 중시하는데 먼저 도판을 백자토로 만들고 건조시켜 800℃에서 초벌 한다.

그 위에 유약을 바르고 바늘 등 예리한 도구로 스크래치(scratch)를 하는데 다시 1260℃에 땐다. 거기에 컬러유약으로 색감을 입힌 다음 1000℃에서 한 번 더 굽는다. 네 번째는 저화도 유약을 사용하여 풍부한 색감을 입혀 200~260℃ 사이에 소성하여 완성한다.

전홍식 화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의도한 것이 나오면 만족은 하겠지만, 가마 불에서 유약이 녹으면서 스크래치에 의도치 않게 우연성이 아주 미세하게 일어나곤 한다. 야생화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움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어 더 흡족할 때가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