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오각진 기업인/오화통 작가 ]“모두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 오각진 기업인/오화통 작가

지난주 5일이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였습니다.

유엔은 올해 환경의 날 주제로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 탈출’을 정했고,

우리도 ‘플라스틱 없는 하루’를 주제로 여러 행사를 했다고 방송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지난 4월 느꼈던 당혹스러웠던 순간이 생각되어졌습니다.

우리가 연간 비닐 봉투를 1인당 420개 사용하는데 비해,

핀란드는 4개만 사용한다는 당시 국내 신문 기사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만해도 약국에서,슈퍼에서, 서점에서,편의점에서 하나씩

순식간에 4개를 받아왔던 날였거든요.

그 대비에 멍해지며 그즈음 읽던 문명사를 다룬 책의 내용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침팬지는 날 것을 씹어 먹느라 하루 다섯 시간을 소모하지만,

사람은 익힌 음식을 먹는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인류가 어떻게 어려운 환경 여건하에서 생존을 해왔고,

번영을 이루었는가를 말해주는 책였습니다.

외양상의 경쟁력으로는 동물계의 서열에서 한참 아래에 있어야함이 당연했으나,

수만년의 세월을 거치는 기간 다른 종과 구별되게

뇌가 컸고,직립 보행을 했으며,언어가 있었고, 도구를 쓰고,불을 쓰고..

결국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데,

이제 그 인류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지구 멸망이 운위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럴 때 환경 파괴와는 거리가 먼 가난한 많은 인류는,

또 책임과는 거리가 먼 많은 생물들의 퇴장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요?

갑자기 당혹스럽고, 어이없어 졌습니다.

 

우리는 우리네의 환경 파괴로 지구가 아파하고 있음을 여러 채널로

알고 있고, 경고로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하지?’라는 막막함도 있지만,

보다 큰 문제는 ‘모두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런지요?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 자손들은 무엇을 주어 살리자는 말이오?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자는 말이오?’

우리 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이

100여년전 세계 일주후 조선 여성의 불쌍한 현실을 보고,

여성 해방을 주장하며 울부짖었던 말입니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그녀의 외침이

환경을 지키는데 우리 각자가 구체적으로 나서라는 말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