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8일 개막한 2018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최초로부터 미래를 향해(The Future Begins in the Past)’라는 테마로 자동차의 역사,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장을 마련했다.

벤츠의 역사가 곧 자동차의 역사로 통하는 만큼, 130여년의 자동차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10여대의 클래식카를 전시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편에는 전기차 브랜드인 ‘EQ’를 필두로 미래 모빌리티를 보여주는 차 3종을 배치했다.

▲1886년 제작된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자동차 역사의 시작'
1886,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메르세데스-벤츠의 역사는 1886년 처음 시작한다. 벤츠 창시자인 ‘칼 벤츠’가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하고 나서부터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1886년 1월 독일 특허청에 특허번호 37435로 등록됐다. 등록된 발명품 이름은 ‘가스엔진으로 움직이는 차량(Fahrzeug mit Gasmotorenbetrieb)’이다.

벤츠의 첫 작품이라 하지만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자동차보다는 ‘움직이는 의자’에 가깝다. 엔진은 단기통 4행정이다. 가벼운 차체에 2명이 탑승할 수 있다. 파이프로 만든 프레임에는 세 개의 커다란 바퀴가 달렸다. 두 바퀴 사이에는 0.75마력의 힘을 내는 엔진이 가로로 놓여있다. 성능은 성인 두 명이 타면 발 빠른 말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인 힘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탈것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1886년 칼 벤츠의 아내 베르타 벤츠가 남편의 발명품으로 독일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첫 장거리 여행을 떠나 자동차의 실용성과 내구성을 입증하기 전까지, 많은 사람은 이 발명품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다.

▲1904년 제작된 메르세데스-심플렉스 28/32 PS.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현대 자동차의 기본 틀'
1904, 메르세데스-심플렉스 28/32 PS

‘메르세데스-심플렉스’는 ‘메르세데스’라는 브랜드 명칭을 최초로 사용하고 현대적 자동차의 기본 틀을 잡아낸 차다. 초기 자동차는 주요 소비자인 왕족과 부호들이 다루기에는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래서 엔진 기술 선구자 ‘고틀립 다임러’의 조수였던 ‘빌헬름 마이바흐’가 엔진 밖에 노출되어 작동하던 부품을 부서지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엔진 안으로 집어넣는가 하면, 구조를 개선해 시동을 거는 과정이나 변속기를 조작하는 방법을 단순화해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차가 심플렉스다.

심플렉스가 1901년 처음 생산·판매됐을 때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던 백만장자들이 정비사의 도움 없이도 몰 수 있는 첫 번째 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도 개인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빌헬름 황제는 1903년 베를린 자동차 전시회에서 마이바흐를 만나 “정말 멋진 엔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름만큼 단순하지는 않다”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며 심플렉스는 개발을 거쳐 성능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모델도 더욱 다양해졌다. 초기모델 ‘28 PS’ 뒤를 이어 1904년에 출시된 ‘28/32 PS’는 대형 고급 차와 소형차 사이에 자리한 모델이다. 당시 배기량이 좀 더 큰 ‘40/45 PS’ 모델도 있었으나 이 모델이 모터스포츠에서 이름을 날리는 동안 ‘28/32 PS’는 일반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 덕분에 심플렉스 시리즈 중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었다.

▲1904년 제작된 메르세데스-벤츠 24/100/140 PS.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슈퍼차저'와 '포르쉐'

1927, 메르세데스-벤츠 24/100/140 PS

‘벤츠 24/100/140 PS’는 벤츠가 처음으로 성능을 염두에 두고 만든 차다. 이 차의 핵심은 슈퍼차저(Supercharger) 엔진이다. 슈퍼차저는 엔진 크랭크샤프를 연결해 엔진과 함께 회전하는 압축기로,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압축해 성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슈퍼차저는 개발 초기에 진통을 겪었다. 고틀립 다임러의 아들 파울이 오랜 시간 엔진 개발에 전념했으나 이사회와의 마찰로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결국 벤츠의 성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이 기술을 완성하는 일은 곧 후임자 몫이 됐다. 그 후임자는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이자 폭스바겐과 포르쉐의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였다.

탁월한 두 기술자의 손을 거쳐 슈퍼차저 엔진은 1924년 완성된다. 배기량은 4.0ℓ와 6.3ℓ 두 종류로 이중 더 높은 출력을 내는 직렬 6기통 6.3ℓ 엔진은 당대 최상위 모델인 ‘24/100/140 PS’에 탑재됐다.

독특한 이름을 구성하는 세 개의 숫자는 엔진 출력을 뜻한다. 맨 앞에 있는 숫자는 당시 독일에서 자동차 과세 기준으로 쓰인 계산상의 출력을 가리키는 이른바 ‘과세 출력’, 가운데 숫자는 실제 엔진의 ‘유효 출력’이다. 많은 차의 이름에 이 두 가지 숫자가 표시됐지만, 슈퍼차저를 단 메르세데스 차들에는 그 뒤에 슈퍼차저가 작동할 때의 출력을 나타내는 숫자가 하나 더 붙었다. 즉 ‘24/100/140 PS’의 엔진은 슈퍼차저가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100마력, 슈퍼차저가 작동할 때에는 140마력의 최고 출력을 냈다.

1926년 다임러와 벤츠가 합병한 뒤 이 모델은 ‘630’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30년에 후속 모델인 770 ‘그로서 메르세데스’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최고의 럭셔리 세단으로써, 현재 S-클래스 디자인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 모델이다.

▲'실버 에로우'라는 별명을 지닌 메르세데스-벤츠 W25.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실버 에로우'의 탄생
1934, 메르세데스-벤츠 W25

세계적인 대공황의 여파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던 1930년대 초반, 사람들에게 모터스포츠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한동안 모터스포츠 활동을 쉬어야 했던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1934년 새로운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규정이 시행되면서 레이싱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새 규정은 냉각수와 각종 오일류, 타이어를 제외한 경주차 무게를 750kg 미만으로 제한했다. 이렇게 정한 데에는 치열한 경쟁으로 경주차의 최고출력과 최고속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위험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주최 측 의도였다.

벤츠가 만든 W 25는 앞 엔진 뒷바퀴 굴림 방식으로 보수적 설계에 신뢰성이 입증된 직렬 8기통 3.4ℓ 엔진과 슈퍼차저를 결합한 기대주였다. 배량은 3360cc에 최고속도는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괴물이었다. 그러나 첫 경주 출전을 하루 앞두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견됐다. 차 무게가 규정에 정한 750kg보다 1kg 무거웠던 것.

팀원들은 기계적인 부분에 손대지 않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다. 심지어 차에 칠한 페인트까지 모두 갈아내고 나서 겨우 무게를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W25는 은빛 알루미늄 차체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경주에 출전했고, 경기에서 평균 시속 122.5km를 기록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W25는 연승 가도를 달리며 ‘실버 에로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른 독일 브랜드들도 알루미늄 차체를 쓰면서 은색은 독일 경주차의 상징이 됐다. W25는 1936년까지 여러 그랑프리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실버 에로우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모터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금까지도 그 명맥은 이어져 메르세데스-벤츠 F1팀 머신의 이름은 ‘실버 에로우’다.

▲1938년 제작된 메르세데스-벤츠 170V 카브리올레 A (W136). 사진=이코노믹 리뷰 장영성 기자

세그먼트의 시작...벤츠와 독일의 생명줄
1938, 메르세데스-벤츠 170V 카브리올레 A (W136)

170V는 작은 엔진을 얹은 중형차 개념으로 벤츠가 처음 내놓은 차다. 직렬 4기통 엔진을 얹은 170V는 1935년 7월 처음 생산됐다. 1936년 베를린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일 때만 해도 이 차가 무려 20년 동안 생산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포석으로 제작됐으나, 실용성이 높았던 이 차는 벤츠 특유의 상위 모델이 지닌 고급스러움을 이어받아 큰 인기를 이었다.

엔진 배기량을 뜻하는 170 뒤에 붙은 V는 엔진이 차 앞쪽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다. 앞서 선보인 뒤 엔진 뒷바퀴 굴림 차 170H와 구분하기 위해 V가 붙었다. 모델 이름은 비슷하지만 두 차는 전혀 다르다.

단면이 타원형인 파이프를 X자 모양으로 결합한 뼈대는 튼튼하고 가벼운 플랫폼이 됐다. 간단한 구조의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과 엔진 진동을 억제하는 설계로 승차감도 뛰어났다. 더구나 38마력을 발휘하는 1.7ℓ 4기통 엔진은 이전 6기통(32마력)보다 실린더가 줄었는데도 높은 출력을 발휘했다. 오늘날 ‘다운사이징’의 선두주자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170V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장 많이 판매된 벤츠 모델로 1942년 11월까지 7만2000여대가 생산됐다. 벤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170V를 가장 먼저 생산을 재개해 메르세데스와 독일 재건의 기틀이 됐고 여러 차례 개선을 거치며 1955년까지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