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지상파 방송사의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리고 있다. 플랫폼의 위기를 넘어 자랑이던 콘텐츠 영역까지 흔들리며 존폐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넷플릭스의 공격적인 시장 공략을 우려하는 기저에는 '거의 모든 것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은' 지상파 방송사의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지상파의 위기가 심해지고 있다. 출처=각 사

직접수신율 하락...만성화된 위기

미디어 시장 장악력을 크게 플랫폼과 콘텐츠로 분류할 경우, 지상파는 플랫폼과 콘텐츠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케이블 중 PP(Program Provider)는 콘텐츠를, SO(System Operator)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위성방송과 IPTV는 플랫폼이다. 지상파를 중심으로 보면 플랫폼 경쟁자가 많다. MPP와 MSO, 혹은 MSP의 등장으로 유료방송 시장의 경계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지만 지상파의 위기는 케이블이 등장한 1990년대 플랫폼 경쟁에서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상파는 플랫폼 경쟁에서 철저히 밀리고 있는 중이다. 2000년대 초반 50%에 이른 직접수신율은 현재 5%에 불과하다. 지상파는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를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으나 직접수신율 5%라는 수치는 '지상파=무료 보편의 가치'라는 공식을 무색하게 만드는 초라한 성적표다. 최근 지상파 방송계에서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라는 말이 쏙 들어간 이유다.

직접수신율이 5%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상파 UHD 본방송을 시작해도 큰 호응이 없다. 지상파는 지난해 5월 지상파 UHD 본방송을 가동하며 꿈에 그린 UHD 시대를 열었으나 원한 700MHz 대역 주파수가 넝마가 되고 주무 부처가 UHD TV를 준비하며 ATSC와 DVB-T2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등의 악재를 만나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700MHz 대역 주파수는 2012년 12월31일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류 후 회수된 꿈의 주파수며, 최시중 전 위원장 시절 방송통신위원회가 상하위 분할 할당이라는 초유의 방식으로 엉망으로 망친 후 국가재난망까지 끼어들어 사실상 잊혀진 주파수가 됐다. 통신사들은 700MHz 대역 주파수를 확보하기 위해 맹공을 퍼부었으나 막상 넝마가 된 후 주파수 경매에서 유찰시키는 충격적인 일을 벌이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사는 운이 없는 셈이다.

지상파가 5%의 직접수신율을 기록하며 주춤하는 사이, 경영상황은 날로 악화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17 방송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방송광고시장 규모는 3조2224원으로 집계됐으며 지상파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지난 2014년 57.5%, 2015년 55.1%에서 지난해 50.4%까지 떨어졌다. 반면 케이블을 누르고 유료방송 시장의 강자가 된 IPTV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IPTV의 지난해 광고 매출은 846억원으로 전년 대비 94.1%나 증가했으며 방송수신료에 이어 IPTV의 킬러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VOD 매출액만 2016년 기준 7055억원을 기록했다.

플랫폼 장악력이 떨어지며 경영악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자 지상파도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간광고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유료방송 업체들과 재송신 분쟁에 나서고 있다. TV 블랙아웃을 불사하면서도 '돈'을 받아야 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최근 방통위가 재송신 협상 무산을 이유로 지상파가 임의로 방송 전송을 끊어버리는 것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분쟁조정 제도 개선을 위한 방송법 일부개정안'이 입법예고 되는 등,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일몰에 따라 유료방송 시장 내부에서도 치열한 패권 다툼이 벌어지는 것도 위협요인이다.  KT가 KT스카이라이프 등을 적극 활용해 공격적인 점유율 확장을 중심으로 '마의 33.3% 점유율'을 넘어 시장을 제패할 경우, 지상파는 치명타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3월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방송사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 실시간 방송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심지어 집에 와도 자기 방에 들어가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VOD를 본다"면서 "방송사가 위기 의식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상파 내부의 문제의식이다. 플랫폼 경쟁력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으나 내부에서 별다른 '액션'이 취해지지 않는 분위기다. 기자와 PD를 비롯한 힘있는 콘텐츠 제작 인력들이 플랫폼 경쟁력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이 방송기술인들이 강력한 문제제기에 나서도 별반 호응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자와 PD 등 일부 화려한 콘텐츠 제작 직군이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낮거나, 혹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예술적 장인정신을 불태우는 사이, 음식을 담을 그릇이 사라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지상파의 협의체인 UHD KOREA가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 넷플릭스가 지상파 콘텐츠 경쟁력도 흔들기 시작했다. 출처=넷플릭스

이제는 콘텐츠마저 위기다

지상파 플랫폼의 위기를 막상 지상파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역시 콘텐츠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콘텐츠는 국내 방송 콘텐츠 중 가장 막강한 자본력이 투입되며, 가장 높은 품질을 보장한다는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부분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2010년대 들어서며 많은 지상파 스타 PD들이 유료방송으로 속속 이적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타성에 젖은 지상파를 뒤로 하고 자기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유료방송, 특히 CJ 계열 케이블로 이동하며 지상파 콘텐츠 경쟁력의 위기도 커지고 있다. 지상파의 특성상 강력한 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론은 지상파 콘텐츠의 위기로 귀결된다.

자연스럽게 지상파 콘텐츠의 의제설정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1996년 방영된 KBS 드라마 <첫사랑>의 시청률은 65%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률은 드라마를 기준으로 삼아도 20%를 넘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2017년 지상파가 언론적폐 청산을 목표로 걸고 총파업에 돌입해도 사회적 여파가 미비했다. MBC <무한도전>이 폐지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후폭풍은 잠잠했고, 지상파 뉴스의 힘도 크게 떨어지는 추세다. 일부 지상파 팬덤은 '본방사수'를 외치고 있으나 이는 필요가 아닌 '의리'의 성격이 강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넷플릭스까지 등장했다. 유료방송의 강세가 일차 충격이라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기업의 공세는 이차 충격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와 협력해 막강한 존재감을 보여줄 채비를 마쳤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한국방송협회가 지난달 17일 "넷플릭스는 국내 진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미디어시장을 장악하고자 시도해 왔지만, 지상파방송은 유료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계 전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우리나라 미디어산업 생태계를 적절히 보호해 올 수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LG유플러스가 불합리한 조건으로 넷플릭스와 제휴하면서 지금까지의 미디어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한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강조한 행간에는 짙은 불안감이 묻어난다.

지상파도 콘텐츠 방어를 위한 대비는 했다. 유튜브의 공습으로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흔들리자 재빨리 국내 포털인 네이버와 카카오 등과 손잡고 스마트미디어랩(SMR)을 출범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콘텐츠 저작권을 지키는 한편 모바일 시장에서 '돈'을 벌겠다는 전략이다. '15초 광고 스킵'이라는 무리수까지 두며 어떻게든 모바일 동영상 시장에서 입지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2012년 지상파 방송사간의 연합 플랫폼으로 시작한 OTT 서비스 '푹'도 있다. 최근 유료 가입자 약 70만명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푹은 KBS와 EBS가 대상인 수신료를 제외하고, 사실상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추구한다는 정체성을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시장에서 과감하게 버리며 탄생시킨 기대주다.

지상파는 플랫폼 경쟁력을 크게 상실한 상태에서 콘텐츠 영역에서도 유료방송에 이어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업체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지상파는 지상파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끝까지 지상파 콘텐츠의 힘을 믿고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고, 힘을 잃어가는 지상파 콘텐츠의 지속성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상파의 진짜 위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