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묘하게 입에 딱딱 달라붙고 기억에 남는 브랜드 이름들이 있다. 이런 브랜드들은 신기하게도 어떤 숫자로 표현되거나 브랜드 이름 뒤에 숫자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개 여기에서의 숫자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붙여진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숫자들에는 브랜드의 시작 혹은 브랜드 정체성을 함축하는 스토리텔링이나 마케팅 원칙들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브랜드 속 숫자들의 재미있는 의미들을 몇 가지 알아봤다. 

긴 역사 - 일품진로 1924, 좋은데이 1929  

▲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 1924, 무학의 좋은데이 1929는 모두 각 기업의 창업 연도다. 출처= 각 사

브랜드의 긴 역사는 그 자체로 좋은 스토리텔링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장수기업 중에는 주류기업들이 꽤 있다. 그들은 창립연도를 제품에 활용해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소주 ‘참이슬’로 유명한 주류기업 하이트진로는 고급 증류 소주 신제품 ‘일품진로 1924’를 출시했다. 여기서의 1924는 하이트진로의 전신인 회사 진로(眞露)의 설립일 1924년 10월 3일에서 따온 숫자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주류 브랜딩이 하나 더 있다.

주류기업 무학은 자사의 주력 소주 브랜드 ‘좋은데이’의 신제품 ‘좋은데이 1929’를 선보였다. 1929라는 숫자 역시 무학의 전신 소화주류공업사의 창립연도다. 무학은 여기에 19세부터 29세 사이 젊은이들이 즐기는 가벼운 주류라는 의미를 부여해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한 달 내내 늘 새로운 - 배스킨라빈스 31

▲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메뉴 수는 실제로 1000가지가 넘는다. 출처=배스킨라빈스

숫자 31은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를 소비자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 숫자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배스킨라빈스를 아예 31(일본어 발음 사티완)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31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궁금해 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배스킨라빈스는 31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곳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배스킨라빈스 미국 본사에서 말하는 31의 뜻은 한 달(31일) 동안 매일매일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선보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맛이 있다는 메시지다. 실제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맛의 종류는 1000가지 이상이다.        

편의점의 개점시간과 폐점시간 - 세븐일레븐 

▲ 세븐일레븐의 세븐(7)은 개점, 일레븐(11)은 폐점시간이라고 한다. 출처= 세븐일레븐

많은 이들이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을 일본 업체로 알고 있지만 놀랍게도 세븐일레븐은 1927년 미국에서 창립된 회사로 본사 역시 미국 텍사스 어빙에 있다. 물론 일본 세븐일레븐이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기에 지금은 일본 기업이라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지만 아무튼 시작은 그렇다. 세븐일레븐의 7과 11은 편의점 운영을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에 문을 닫는다는 의미다. 아마 미국에서는 16시간 동안 점포가 운영하는 게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세븐일레븐은 24시간 편의점이다.  

가장 낮은 숫자가 기준- 위스키 ‘OO년산’?

▲ 위스키 연산은 원액의 가장 낮는 숙성기간을 의미한다. 출처=픽사베이

발렌타인 30년산, 글렌피딕 18년산 등 고급 위스키의 이름 뒤에는 항상 연산이라는 숫자가 붙는다. 이 연산의 숫자가 클수록 위스키의 가격도 비싸진다. 그래서 위스키 한 병 전체가 12년, 16년 숙성된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위스키의 연산은 사실 위스키에 들어 있는 여러 ‘원액’들 중 숙성 기간이 낮은 것을 기준으로 매긴 숫자다. 즉, 12년산이라고 하면 그 위스키에 들어 있는 원액들 중 숙성기간이 가장 짧은 것이 12년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연산을 표기하지 않는 ‘무연산’ 위스키들도 많은데, 이는 최소 숙성기간인 3년 이하 원액이 들어 있어 오히려 굳이 표기하지 않는 게 낫기 때문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치열한 전투 – 1942

▲ 비행기 슈팅 게임의 원조 <1942> 첫번째 시리즈 포스터와 게임 화면. 출처= 캡콤

1942는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숫자다. 1942라는 숫자가 게임에서 가장 먼저 쓰인 것은 일본의 게임 제작사 캡콤(CAPCOM)사가 1987년 만든 비행기 슈팅 게임 ‘1942’다.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이후 ‘1945’ 등 후속 작품들이 나오기도 했다. 1942는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1942년을 의미한다. 1942년은 1941년 12월 일본군이 하와이에 주둔한 미군을 기습 공격한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 반격이 있었던 전쟁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추기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게임 ‘1942’는 일본에서 만든 게임이지만 게임의 내용은 2차대전의 연합군 비행기가 일본 함대를 격파하고 끝내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