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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산 서평] “여론조사로는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다”
주태산 주필  |  joots@econovill.com  |  승인 2018.06.10  10:30:00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더퀘스트 펴냄.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당시 여론조사는 ‘인종’ 문제가 더 이상 미국민들의 투표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아님을 보여줬다. 특히 세계적 권위의 미국 갤럽은 오바마 당선을 전후하여 실시한 수많은 여론조사를 통해 "미국 유권자 대부분이 오바마가 흑인이란 점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선거 직후 학계의 유력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일부 권위자들은 “마침내 미국은 탈인종사회가 됐다”고 선언했다.

과연 2008년 미국의 인종주의는 청산된 걸까? 저자는 2012년 어느 날 구글 트렌드란 도구를 처음 접했다. 구글이 무료서비스하는 구글 트렌드는 특정 단어나 문구가 다른 시간, 다른 지역에서 얼마나 자주 검색됐는지를 통계그래프로 보여준다.

저자는 그날 여러 단어를 입력하다가 ‘깜둥이(Nigger)’를 쳐봤다. 흑인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이라 검색량이 극히 적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단어는 ‘멍청한 깜둥이’ ‘깜둥이가 정말 싫어’라는 문구와 함께 구글에서만 연간 700만건이나 검색되고 있었다. 심지어 4년 전 오바마가 당선되던 날에도 ‘오바마’가 들어간 검색어 100개 가운데 1개 꼴로 ‘KKK’(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체)나 ‘깜둥이’가 있었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겉으로는 탈인종사회의 도래를 반기는 척하면서도 개인 공간에서는 밤새도록 인종차별적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가 구글 트렌드의 검색어 통계를 깊이 파고 들자, 그곳에서는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없었던 미국인들의 민낯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인종주의가 심한 지역들에 대한 통념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 인종주의는 남부와 공화당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구글 트렌드를 조사해보니 인종차별적 검색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 뜻밖의 지역인 뉴욕 북부, 펜실베이니아 서부, 버지니아 서부, 오하이오 동부, 산업지역인 미시간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를 토대로 새 인종주의 지도를 만들었다. 기존의 여론조사나 학계의 연구결과를 반영한 인종주의 지도는 미국대륙을 남북으로 가르는 것이었지만, 구글 트렌드로 만든 새 인종주의 지도는 동서로 구분돼 있었다.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경선후보로 맞붙었던 같은 민주당 존 케리가 선전한 지역에서 대선때 오바마 득표가 저조했다. 저자가 만든 새 인종주의 지도를 적용하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역이라고 여겼지만, 구글트렌드에 포착됐듯이 실제로는 인종차별적 성향이 존재해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2012년 대선결과 분석을 통해 “인종주의만으로 오바마는 전국적으로 4%의 유권자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저자는 구글 데이터로 누가 투표장에 나올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투표일 몇 주 전부터 ‘투표하는 법’ ‘투표장 위치’ 등을 많이 검색한 지역의 투표율이 확실히 높았다는 것이다.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가 대권을 놓고 맞붙었을 때 흑인 대다수가 “투표에 참여하여 트럼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여론조사에 답했다. 이를 근거로 거의 모든 여론조사기관이 힐러리의 압승을 예상했다. 투표 당일에도 힐러리의 승리를 의심하는 여론조사기관이나 언론사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거의 모든 유력 언론사들이 힐러리 승리를 기정사실화하여 대대적인 보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구글 트렌드 만큼은 트럼프의 승리를  일관되게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대선 이전부터 흑인 밀집지역에서 투표 관련 정보를 검색한 빈도가 현저히 낮았기에 흑인 표가 부족하여 힐러리가 불리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투표 당일, 투표장을 찾은 흑인이 매우 적었다.

구글 트렌드는 여론조사 때마다 '누굴 찍을 지 잘 모르겠다'던 유보적 유권자들의 움직임도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힐러리 편을 들었던 유력 언론사들은 트럼프의 막말을 집중 부각하면서 유보적 유권자들이 트럼프에 실망하여 힐러리쪽으로 몰릴 것으로 거의 확신했다.

하지만 구글 트렌드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가 점쳐지던 중서부의 주요 주에서 검색어 ‘트럼프-클린턴’이 ‘클린턴-트럼프’보다 많이 검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2명의 이름을 묶어 검색할 경우 우호적인 인물을 먼저 적는다.  이를 통해 저자는 유보층이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힐러리보다는 트럼프에 좀더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개표 결과 구글 트렌드에 비친 미국인들의 숨겨진 속내는 고스란히 표로 연결됐다. 구글 트렌드에 비친 대로 트럼프가 이겼다. 저자가 만든 새 인종주의 지도는 트럼프 지지율을 표시한 지도와 일치했다. 거의 모든 미국 유력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의 예측은 엉터리로 판명됐다. 

지금 여론조사는 신빙성을 크게 잃고 있다.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작은 수의 법칙(Law of Small Numbers)’에 시달린다. '작은 수의 법칙'은 표본이 아무리 작더라도 전체 인구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인데,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익명이 보장되는 설문조사일지라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멀쩡하게’ 보이는 방향으로 답변을 한다.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다. 이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 로저 투랑조 미시간대 명예교수는 말한다. “사람들은 평생 세 번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 그 버릇은 설문조사에서도 나온다. 설문조사는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유인(인센티브. Incentive)도 없다.”

반면 빅데이터는 ‘디지털 자백약’으로 기능한다. 구글 검색은 관리자 없이 혼자서, 온라인으로, 익명으로 이뤄진다. 자신의 은밀한 검색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해 입거나 자신의 속내나 실체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속마음을 드러내게 만드는 ‘유인’이다.

저자는 “혼자서 작고 네모난 빈 칸에 단어나 문구를 입력하는 일상적인 행동은 작은 진실의 발자취를 남기며, 이 자취 수백만 개가 모이면 결국 심오한 현실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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