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은 6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지난해 6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통화 긴축의 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한 지 5개월 만이었다.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금리인 1.25%에서 1.50%로 0.25%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그 후 7개월이 지났다. 기준금리는 여전히 1.50%에서 멈춰 있다. 지난 5월 24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도 기준금리는 만장일치로 동결됐다. 신임 금통위원의 ‘매파(금리인상 지지)’ 성향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소수의견은 없었다.

시장이 내다보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보는 다음 기준금리 인상 시점은 올 상반기나 2분기에서 올 3분기 이후, 하반기로 점차 늦춰졌다. 아예 연내 기준금리 조정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체감지표 악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을 두고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 지난해 11월 기준금리가 1.50%로 인상된 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7개월 째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 결정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기준금리 7개월째 동결… 체감지표 둔화되며 인상 가능성↓

5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고용지표 둔화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난 4월 발표문에서 ‘취업자 수 증가폭이 축소되는 등 회복세가 둔화됐다’는 표현은 5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고 수정된 점은 고용 둔화가 장기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용 외에도 연초 대비 수출, 산업생산 등 실물지표의 둔화흐름은 더욱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민간부문의 일자리는 전년 대비 오히려 1만개가 감소했다. 제조업 내 80% 업종의 설비가동률 역시 전년 대비 하락했으며 이는 고용 부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반기 전망도 어둡다. 정부와 한은은 여전히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로 3%를 제시하고 있지만 하반기 근로시간 단축, 미국의 자동차 관세부과 가능성은 추가적인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체감실업률, 신규 취업자 수 증감률, 가동률, 소비심리 등 체감지표의 악화가 지속될 경우 4분기 기준금리 인상도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올해 국내 성장률을 2%대 후반으로 전망했다.

 

美 경기회복세 지속…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더 벌어질 듯

미국은 금리인상 채비를 마쳤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를 유지한 미국은 2015년 12월을 시작으로 0.25%포인트씩 6회 금리를 인상했다. 우리보다 낮았던 미국 정책금리(기준금리) 상단은 지난 3월을 기해 1.75%까지 높아졌다. 이로써 10년여 만에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다.

미국의 연내 추가 인상 시기는 6월이 유력하다. 미국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포함해 연내 2회에서 3회 정도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대로라면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0.75%포인트에서 최대 1%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통상 투자금은 금리가 높고 안전한 시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1%포인트까지 벌어지면 3조원 가까운 외국인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1%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져도 우리 경제가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원화의 안정적인 흐름과 사상 최대를 기록한 외환보유액 등을 감안하면 용인 가능한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은 10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율시장의 안정은 한은의 독자적 통화정책 여력을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실증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지난달 출간했다. 최우진 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미국 통화정책의 정상화 이후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부채성 자금(채권 및 투자)을 중심으로 외국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있으나 외국자본 전체로는 유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한미 금리차는 외국자본 유출과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갖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은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른 금리인상은 외국자본의 유출을 유발할 수 있으나 이는 GDP 대비 0.38%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라며 “현재 우리 경제는 3989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어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금리인상 충격에 따른 자본유출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선제적 금리인상이 낮은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통상 높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보완적으로 올리는 측면이 있는데 오히려 금리가 오르면 물가가 따라서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마틴 유리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신피셔효과(Neo-Fisher Effect)에 따르면 명목금리를 1%포인트 인상하면 인플레이션이 1년 이내에 거의 1%포인트 상승한다고 밝혔다.

피셔효과란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고안한 것으로 인플레이션이 명목금리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명목금리는 실질금리와 예상 인플레이션율의 총합과 같다는 이론이다. 신피셔효과는 여기서 나아가 보다 단기 관점에서도 이러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리베 교수는 “명목금리를 장기적으로 1%포인트 인상시키는 항구적 금리인상 충격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1년 이내의 단기에도 거의 1%포인트 상승했다”면서 “다만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 등 일시적인 충격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