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6월 A씨는 서울 아현역 인근 교육환경보호구역 중 상대보호구역에 있는 건물에서 당구장 영업을 하기 위해 서울서부교육지원청에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금지행위 및 시설 제외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해당 주무관청은 “당구장은 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거부처분을 하였다. 이에 A씨는 서울행정법원에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마침내 지난 1월 26일 서울행정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2. 지난해 6월 B씨는 서울 송파구 어느 중학교 출입문으로부터 102m가량 떨어진 건물 지하 1층에서 당구장을 운영하고자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금지행위 및 시설 제외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해당 주무관청 역시 “당구장은 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거부처분을 하였다. 이에 B씨는 서울행정법원에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지난 3일 B씨는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의 오락가락하는 듯한 ‘당구장 판결’이 화제가 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였고,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당사자들에 대하여 같은 법원이 서로 다른 판결을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판결의 부당성을 넘어 사법 불신까지 언급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두 판결이 서로 달랐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A씨와 B씨는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서 당구장을 설치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교육환경법) 제8조 제1항은 교육환경보호구역을 ‘절대보호구역’과 ‘상대보호구역’으로 나누는데, 전자는 학교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로 50미터까지인 지역(제1호)을, 후자는 학교경계등으로부터 직선거리로 200미터까지인 지역 중 ‘절대보호구역’을 제외한 지역(제2호)을 각 의미한다. 또한 같은 법 제9조는 ‘절대보호구역’에서의 당구장 설치는 무조건적으로 금지를 하지만(제21호), ‘상대보호구역’에서의 당구장 설치와 관련해서는 ‘교육감이나 교육감이 위임한 자가 지역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금지행위 및 시설 제외’를 허용하고 있다(제9조 단서 참조). 소송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정확한 사실관계까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A씨와 B씨 모두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금지행위 및 시설 제외’신청을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두 사건은 공히 교육환경보호구역 중 ‘상대적 보호구역’ 내 당구장 설치가 문제된 사안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편, 무조건적으로 당구장 설치를 금지하는 ‘절대보호구역’과 달리 ‘교육감이나 교육감이 위임한 자가 지역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당구장 설치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같은 법 제9조 단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상대보호구역’에서 당구장 설치 허용 여부는 전적으로 주무관청의 ‘재량’에 달린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무관청이 A씨 및 B씨의 ‘상대보호구역’ 내 당구장 설치를 허용할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교육환경법이 당구장 설치 규제를 통해 얻고자 하는 ‘학생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제1조)와 당구장 운영자가 누려야 할 ‘직업선택의 자유 내지는 영업권’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익형량’을 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물론 법원 역시 그와 같은 기준으로 ‘상대보호구역’ 내 당구장 설치 허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두 사건의 운명을 가른 것은 결국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서로 달랐던 법원의 ‘이익형량’ 결과라 할 수 있다.

먼저 A씨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당구장 내에서 흡연이나 도박 등 비교육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으나, 이는 당구가 가지는 본래 속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당구장은 지난해 12월부터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었으므로, 당구장에서 흡연을 통한 비교육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줄어들었다는 점’을 들어 A씨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는 ‘이익형량’의 결과 당구장 운영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 내지는 영업권’이 더 우월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방론에 불과하다. 오히려 법원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린 데에는 A씨가 설치하고자 했던 당구장이 ‘상대보호구역’ 내에 설치된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거의 통학하지 않는 길목에 있거나, 최소한 학생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어서 청소년들에 대한 유해성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B씨 사건에서 법원은 ‘당구 자체는 건전한 스포츠 종목이지만 당구 게임이 진행되는 장소나 환경에 따라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학업 및 보건 위생 측면에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거나 ‘학교 주변에 당구장이 생기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45.6%를 차지한 한국교육개발원의 설문 조사, 당구장에 출입하는 학생들이 흡연과 음주를 더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 등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판결의 방점은 해당 당구장이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불과 102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 주통학로는 아니더라도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상당수의 학생들이 등·하교 시 당구장 옆을 지나가게 된다는 점에 찍혀있다. B씨 역시 A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대보호구역’ 내에 당구장을 설치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나, 하필 학생들의 눈에 잘 띄는 ‘목이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었던 까닭에 법원은 부득이 B씨 당구장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언론의 단편적 보도만 놓고 보자면, 마치 법원이 비슷한 사안에 대하여 서로 다른 판결을 하고, 그것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부추기는 것으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놓고 보면 많은 사건들이 그러하듯 이번 판결들 역시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거나 일관성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18세 미만 청소년들에 대하여 당구장 출입을 허용(헌법재판소 1993. 5. 13. 선고 92헌마 80결정 참조)한 마당에 앞으로도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당구장 설치를 금지해야 할까? 보다 본질적으로 당구장은 청소년들을 탈선의 길로 이끄는 유해시설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국회, 더 나아가 국민의 법 감정에 달린 문제다. 법원은 법을 해석할 권한은 있을지언정, 법을 개정하고 창조할 권한은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