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오는 2030년까지 3개 이상의 사업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고, 모든 사업에서 세계 최고가 된다는 ‘월드베스트씨제이(World Best CJ)’ 목표를 세웠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 사업(그린 바이오)이 글로벌 시장 최전선에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이 회장의 구상은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린 바이오는 생물체의 기능과 정보를 활용해 각종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바이오 식품, 생물농업 등 미생물과 식물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능성 소재와 식물종자, 첨가물 등을 만들어내는 산업 분야를 뜻한다.

▲ 발린을 비롯해 라이신 등 CJ제일제당의그린 바이오 주요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선양바이오 공장 전경. 출처=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실적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바이오 사업의 연간 매출이 지난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미생물 발효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그린 바이오 시장은 통상 시장의 유동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는 선제 투자를 바탕으로 폭넓은 포트폴리오와 고도의 연구개발(R&D) 경쟁력을 갖춰 여러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실한 기초체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도 바이오 사업의 호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그린 바이오 시장은 라이신과 매치오니, 쓰레오닌 등 동물의 생육을 돕는 사료용 아미노산과 핵산이나 MSG처럼 식품에 사용돼 맛과 향을 좋게 하는 식품조매소재 등이다. 최근 알지닌 등 특정한 효능을 보유해 건강식품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 아미노산도 각광받고 있다.

품목별로 작게는 수천억원에서 크게는 수조원 규모에 이르는 시장규모에 독일이 에보닉, 일본의 아지노모토 등 글로벌 기업의 각축장이 됐다. 그 가운데 CJ는 라이신·트립토판·핵산·발린의 4개 품목에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 글로벌 기업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 

정공법으로 위기 정면돌파한 CJ의 ‘한 수’

CJ는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고민이 깊었다. 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라이신의 공급 과잉으로 글로벌 판매가격이 떨어지면서 성장과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CJ는 전체 사료용 아미노산 시장의 다양한 제품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라이신 의존도를 낮추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 결과, 지난 2013년 당시 전체 바이오 사업 매출에서 60%가 넘었던 라이신의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40%대로 낮아졌다. 상대적으로 고수익 제품군인 트립토판과 핵산 등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외형성장과 수익성 모두 개선됐다.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한 움직임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5년 라이신보다 시장규모가 큰 핵심제품 L-메치오닌 생산을 시작했다. 이로써 CJ는 친환경 발효공법으로 5대 사료용 아미노산을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회사가 됐다. 2016년에는 중국 기능성 아미노산 업체 하이더(Heide)와 미국 바이오벤처 기업 메타볼릭스(Metabolix)의 자산을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농축대두단백 1위 업체인 브라인의 셀렉타(Selecta)를 인수하는 등 사업 영역 확대를 지속하고 있다.

 

다시 찾아온 기회… 시황 전망도 밝아

글로벌 그린 바이오 시장 현황도 CJ에 긍정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미노산 시장이 지난 2016년부터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올해 초부터 판가가 상승을 이어가고 있다. 또 중국의 환경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면서 화학적 공법을 사용하는 다른 업체보다 친환경 공법을 활용하는 CJ가 한층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 CJ제일제당의 중국 센양 바이오 연구센터. 출처= CJ제일제당

중국 내 라이신 가격은 4월 들어 ㎏당 8.8위안(1472원)으로 지난해 6월 저점과 비교해 약 10% 상승했다. 더불어 최근 미국산 대두(콩)에 대한 중국의 관세 부과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내 대두박과 발효대두박의 가격이 상승하면 보완재로 취급되는 라이신 가격도 함께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일본 아지노모토가 7월 브라질 라이신 공장의 생산을 중단하고 에보닉이 이달 말 헝가리의 쓰레오닌 공장 생산을 중단해 이들 업체들이 소화한 수요도 CJ가 흡수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CJ 관계자는 “1991년 인도네시아에 첫 해외 바이오 공장을 세운 이래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집중한 결과 연간 매출 2조원 돌파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면서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로 고객 수요에 따른 최적의 솔루션을 함께 공급하는 ‘기술마케팅’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업체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 확고한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성장 잠재력 큰 글로벌 핵산 시장 제패

핵산은 음식 맛을 더해주는 식품 조미소재로, CJ가 글로벌 그린 바이오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 있는 4개 품목 중 하나다. CJ는 연간 4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핵산 시장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초격차 1위’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60% 이상의 시장점유율(생산량기준)로 8년 연속 1위에 올랐다.

글로벌 핵산 시장 1위에 오른 데에는 선제 투자를 지속하며 확보한 고도의 연구개발(R&D) 역량이 주효했다. 이를 통해 품질과 원가경쟁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다. 중국 핵산 시장에서 CJ의 핵산제품은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기업 간 거래(B2B)가 대부분 사업의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다. 중국 내 핵산업체들은 제품만을 제공하는 ‘제품 마케팅’에 주력한다. CJ는 레시피 등을 함께 제공하는 ‘기술 마케팅’으로 수요와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CJ는 중국 내 성장을 바탕으로 지난해 연간 핵산 판매량이 약 20% 증가했고 올해 1분기에도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약 20%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CJ는 1977년 처음으로 핵산을 생산·출시한 이래 글로벌 시장 공략을 지속해왔다.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 총 세 곳의 글로벌 핵산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두 곳이 중국 랴오청과 선양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다.

핵산은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 속하는 다양한 품목 중에서 라이신이나 트립토판 같은 사료용 아미노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그러나 최근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효자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CJ 관계자는 “글로벌 핵산 시장 1위 기업이 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고객이 원하는 품질수준보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초격차 기술경쟁력”이라면서 “앞으로 핵산 사업이 CJ가 글로벌 1위 기업이 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발상이 만든 발린시장 초격차 1위

발린은 돼지·닭 사료에 필수 아미노산을 더하는 첨가제로 쓰인다. CJ는 지난해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60%를 넘어서며 1위에 올랐다. 2014년 중국 선양 공장에서 발린을 생산하며 글로벌 시장에 처음 진출한 지 3년 만이다.

시장 후발주자인 CJ는 어떻게 1위가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역발상이었다. 발린시장은 아지노모토를 비롯해 먼저 진출한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 자돈(仔豚·새끼돼지) 위주의 수요를 공략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인 CJ는 자돈 아닌 모돈(母豚·어미돼지)과 육계(肉鷄) 등 신규 수요 확보에 주력했다.

시장 진출과 동시에 중국과 유럽 등에서 모돈과 육계를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사료를 섭취케 해 생산능력을 측정하는 사양시험을 했다. 또 사료 내 조단백질(Curd Protein, 질소함량이 높은 단백질) 함량을 낮추고 그 대신 발린을 비롯한 아미노산을 첨가하는 친환경적 배합비를 제시했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CJ는 이전 유럽지역의 수요뿐 아니라 남미와 중국 등 대형 시장의 수요도 동시에 확보하며 시장에 진출한지 3년 만에 초격차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CJ 관계자는 “그린 바이오 사업의 핵심경쟁력인 우수 균주(菌株)에 대한 연구개발과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의 생산량) 향상에도 주력해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원가경쟁력을 유지·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