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전자 ICT강국 한국의 위상이 흔들린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LCD에서 시작된 현재의 디스플레이 업계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네이버는 구글의 공습을 막아내고 토종 포털 업계의 자존심을 지켰으며 카카오는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하며 승승장구했다.

문제는 지금이다. 국내 ICT 업계에 외국 기업들이 속속 진입하거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자의 대반격이 시작되며 최근 한국 전자 ICT 강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국내경제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연속으로 울리는 가운데, 전자 ICT 업계마저 흔들리면 끔찍한 파국이 시작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검색 업체 구글은 국내 ICT 시장에서 존재감을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다. 국내에서 지난해 기준 구글 플레이스토어 판매 매출액은 4조8810억원으로 집계된다. 30% 수수료만 계산해도 약 1조60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와 기타 매출을 더하면 3조원 이상의 매출액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포털 검색 점유율에서 구글은 네이버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 외 플랫폼 전략을 중심으로 존재감을 확보하는 중이다. 조만간 구글이 구글쇼핑을 정식 출시할 경우 네이버와 다음은 물론, 국내 오픈마켓 사업자는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유튜브 레드가 폐지되고 유튜브 뮤직 프리미엄이 정식 출시될 경우 그 파급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 유튜브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출처=앱애니

구글 강세는 앱 개발사별의 사용시간에도 확인할 수 있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지난 4월 기준 앱 개발사별로 사용시간을 조사한 결과 구글은 313억분을 기록해 1위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카카오는 305억분을 기록했으며 네이버는 201억분이다.

구글은 지난해 4월과 비교해 높은 성장세를 보였으나 카카오는 지난해 4월 349억분에서 올해 4월 305분으로 줄어들었고, 네이버도 같은 기간 216억분에서 201억분으로 낮아졌다. 국내 앱 생태계에서 구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글의 국내 ICT 공략 선봉장은 유튜브다. 와이즈앱이 4월 기준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의 세대별 사용 현황을 발표한 결과, 10대부터 40대까지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로 나타났다. 10대에서는 유튜브, 카카오톡, 페이스북, 네이버 순이었으며 20대에서는 유튜브, 카카오톡, 네이버, 페이스북 순이다. 30대도 유튜브가 1위며 뒤를 이어 카카오톡과 네이버, 모바일 게임 검은사막이 뒤를 이었다. 40대는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톡, 다음 순이었다. 유튜브의 1인당 월 이용 회수는 126회며 지난 4월 기준 유튜브 앱의 월간 MAU(순사용자수)는 2924만명이다. 1인당 월 882분을 소비하는 셈이다.

▲ 유튜브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출처=앱애니

유튜브의 등장은 많은 것을 바꿨다.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 점유율을 일부 잠식하고, 국내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시장을 석권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 2월 커넥트 데이에서 유튜브에 대한 경계감을 숨기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토종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인 아프리카TV와 판도라TV 등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포털은 지상파 방송사와 협력해 양질의 동영상 콘텐츠를 독점 수급하는 전략으로 맞서는 한편, 네이버는 브이 플랫폼을 통해 반격에 나섰으나 유튜브에 크게 밀리는 중이다. CJ E&M의 티빙은 한국형 유튜브를 표방하며 플랫폼 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나 아직 시작 단계다.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시장이 부상하며 OTT(오버더탑) 시장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일찌감치 푹(Pooq)을 통해 N-스크린 시대를 준비했으나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로 크게 휘청이는 중이다. SK브로드밴드는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에 집중하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으나 넷플릭스의 아성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 롭 로이 넷플릭스 콘텐츠 수급 담당 부사장이 지난 1월 자기들의 콘텐츠 수급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토종 OTT 업체 중 왓챠가 그나마 희망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역시 증명해야 할 점이 많다. LG유플러스를 시작으로 각 IPTV 사업자들이 속속 넷플릭스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넷플릭스 천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도 외국 기업 경계령이 떨어졌다. 한국은 한때 ‘외산폰의 무덤’으로 불렸으나 이는 옛 말이 됐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국내 점유율 60%를 넘기면서 선방하고 있지만 애플의 아이폰 공세가 만만치 않다. 올해 구축한 애플스토어를 중심으로 시장 협상력을 높일 경우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대격변이 찾아올 수 있다. 중국의 화웨이도 긴 호흡으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정식 출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화웨이는 홍대 직영점을 새롭게 리뉴얼하며 태블릿과 액세서리 중심의 라인업을 새롭게 꾸리는 등, 국내 시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화웨이는 현재 국내에 66개의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 화웨이가 홍대 직영점 리뉴얼을 마쳤다. 출처=화웨이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도 어렵다. 글로벌 순위 16위 수준의 시장 규모를 지니고 있으나 세계 1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전무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출은커녕 국내 시장을 속속 외산 기업에게 빼앗기는 중이다. 지나친 노동 집약형 문화와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악재가 겹치며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초연결 ICT 시대의 핵심 중 하나인 클라우드 업계가 대표적이다. 아마존의 AWS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등이 속속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 진입해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구글은 최근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 회원사로 가입했으며 추가 IDC 설립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국내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을 석권한 AWS와 애저는 굳히기에 돌입했다. AWS는 올해 1월 국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까지 받으며 사실상 국내 시장을 평정했다. KT와 LG유플러스가 착실하게 IDC를 구축하는 한편 티맥스오에스와 이노그리드 등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자체 IDC 건설에 나서는 등 반격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은 미비하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통신 장비부터 다양한 하방 제조업 전반에 외산 기업들의 공습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국내 전자 ICT 업계가 외산 기업들에게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던 국내 전자 ICT 기업들도 위기에 직면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BOE와 같은 중국 제조사들의 반격이 시작됐고 반도체 시장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ICT 기업과 자동차 등 제조업 회사들의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빅딜에 가까운 인수합병이 연이어 벌어지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어 한국 ICT 기업의 입지는 좁아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