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미북정상회담이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 방안이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를 원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 프로세스 초기에 북한이 과감하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탄두·핵물질의 일부 북한외 반출은 물론 강도 높은 사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적대관계 종식과 체제 보장 의지를 비핵화 종료 시점이 아닌 적절한 단계에서 제공할 것을 원한다. 북한은 CVID의 교환조건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안전 보장(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도 이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제는 미국과 북한 모두 비핵화 비용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 비용은 얼마이고 누가 질지에 대해 미국이나 북한 모두 입에 자물쇠를 단 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를 포기하는 대가로 엄청난 청구서를 내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과연 김정은이 내놓을 청구서는 얼마짜리가 될까? 미국의 경제전문 잡지 포춘은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규모다. 물론 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 것이란 추정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포춘, 북한 비핵화 비용 10년간 2조달러, 2100조원 추정

포춘은 지난달 10일 한반도 평화 비용을 10년간 2조달러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영국 유리존 유리존 캐피탈 연구소의 스티브 젠과 조애나 프레이어 연구원은 남북이 통일되고 비핵화한 북한이 '경제 자립'하는데 어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한지를 추정했다. 

 이들은 통독비용을 근거로 삼았다. 통독과정에서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총비용이 1조2000억유(1조4000억달러)로, 현재 가치로 1조7000억유로(1조9870억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기초로 산출했다. 약 2조달러는 우리돈으로 약 2100조원이다. 이는 과거 랜드연구소 추정치보다는 많고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센터 추정치 하단과 같은 수준이다.  

남한과 견준 북한의 인구 규모는 서독 인구에 대비한 동독 인구 규모에 비해 훨씬 크지만 북한은 산업기반을 갖춘 동독에 비해 개발이 훨씬 덜 됐다는 점도 감안됐다.

젠과 프레이어는 "핵무기를 감안하면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전세계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금융지원을 요구할 처지에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같은 비용부담을 전 세계가  다 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중 하나의 선택지가 한국과 중국, 일본과 미국 등 4개국이 분담하는 것인데 한국에는 향후 10년간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이들은 예상했다.

▲ 통일비용 기존 연구.

이 비용을 4등분(525조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향후 10년간 4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은 1.7%, 중국 1.6%, 일본 7.3% 정도로 이들은 추정했다. 

한국은 GDP 대비 무려 18.3%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이론상의 추정이지만 저성장에 허덕이는 한국경제에는 엄청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들 4개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와 금융 지원, 민간투자,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참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비핵화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포춘은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예로 들었다. 

스티븐 젠과 조애나 프레이어 연구원은 “비핵화했지만 개발이 뒤진 북한이 세계에 ‘평화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고 가정하면, 그것은 북한 경제가 자립할 수 있는 가격표(프라이스태그)와 함께 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 50년간 최대 4822조, 피터벡 30년간 5340조 추정

이보다 더 큰 비용 추정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015년 내놓은 '통일비용과 정책과제'에서 2026년 평화통일을 가정했을 때 향후 2076년까지 연 96조원, 총 4822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북한의 소득수준이 남한의 66%에 도달하는 지점까지 소요되는 비용을 통일비용으로 가정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남북교류협력 수준이 더 긴밀해질수록 통일비용이 줄어든다고 전제하고 특별한 교류 협력이 없을 경우, 최대 비용은 48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50년간 4822조원이니 10년에는 964조4000억원 꼴이다.

▲ 국회 예산정책처 통일비용 추계(2015년)

북한에 식량이나 의료 등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경우 2065년까지 3100조원(연 80조원)이 들고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를 포함한 경제적 투자 등 전면적인 교류협력이 진행될 때는 2060년까지 2316조원(연 68조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센터의 한반도 전문가인 피터 벡 연구원은 2010년 워싱턴의 한국대사관 홍보원인 코러스 하우스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의 비용과 결과’라는 제목의 강연회에서 통일비용을 30년간 최대 5조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북한주민들의 소득을 남한주민들의 80%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으로 가정할 때, 가장 바람직한 독일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지더라도 30년에 걸쳐 2조달러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베트남이나 예멘 처럼 통일에 무력이 개입될 경우에는 통일 비용이 3조달러에서 5조달러(현재 환율기준 5340조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 비용은 전제 조건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난다. 통일의 형태와 방법, 북한 경제 목표 수준, 비용 부담 시간 등에 따라 평화 비용 추정치는 큰 차이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상당히 클 것'이며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공짜점심은 없다는 명제는 북한 비핵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민들은 이 사실을 직시하고 비용부담을 할 태세를 갖춰야만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