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혁명> 홍익희·홍기대 지음, 앳워크 펴냄

[이코노믹리뷰=최혜빈 기자] 한동안 뜨겁게 분 가상통화 열풍은 현재 침체기를 맞고 있다. 가상통화 시장은 위축됐으며 전체 시가총액 또한 절반으로 줄었다. 유독 가상통화에 관심이 컸던 한국은 가상통화업계에서도 중요한 시장의 하나로 꼽힐 정도다.

<유대인 경제사> 시리즈로 유대인이 만든 거대 경제의 역사를 풀어내어 주목받은 홍익희 세종대학교 교수는 이 책 <화폐혁명>을 통해 가상통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가상통화가 기존의 화폐권력, 즉 달러에 도전했기 때문에 가격 하락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한다. 화폐권력이 가상통화를 길들이려 한다는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역사를 먼저 상세히 알아야 한다.

저자는 “화폐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화폐와 현행 통화제도의 문제점, 가상통화의 탄생 배경, 그리고 가상통화가 앞으로 어떤 전쟁을 벌여야 할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새로운 화폐혁명의 전조로서 가상통화를 바라보면서, 1차 화폐혁명(실물화폐), 2차 화폐혁명(신용화폐), 그리고 3차 화폐혁명(신뢰화폐)으로 나눠 설명한다.

실물화폐가 등장한 1차 화폐혁명은 자기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필요한 물건과 맞바꾸는 물물교환의 시대를 끝내면서 시작됐다. 사슴가죽으로 만든 가죽화폐나 금과 은이 혼합된 호박금 등이 최초의 화폐였다고 한다. 실물화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는데, 화폐는 개인과 부족을 넘어 국가제도와 결합했고 이를 통해 제국의 탄생이 실현됐다. 그리스, 로마, 스페인 제국은 모두 자기의 화폐를 기축통화로 만들면서 전 세계의 패권을 장학했다. 하지만 실물화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덫에 걸리면서 제국을 무너뜨렸다.

2차 화폐혁명은 실물이 아닌 신용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신용화폐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다름아닌 달러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미국, 특히 화폐권력의 상황에 따라 전 세계의 경제가 흔들리면서 사람들은 달러의 신용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가상통화다.

기존 화폐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한 가상통화의 장점은 다양하다. 신용카드처럼 불법도용될 우려도 없고, 송금거래 시 중개은행을 거칠 필요가 없어 간편하다. 또한 발행되는 숫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없다. 정부나 은행 등 중앙기관에 의해 구좌가 동결되거나 압류될 염려가 없다는 점도 있다.

저자들은 현재 가상통화를 둘러싸고 다양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상세히 짚는다. 이스라엘은 현금 의존도를 줄이고 빠른 결제시스템 확립을 위해 국가 가상통화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가상통화가 태생적으로 지닌 탈중앙화 성격을 벗어난 중앙집중 화폐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국가 가상통화를 만들어 기술혁신을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스위스와 러시아, 캐나다도 여기에 합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단순히 국가 발행이 아닌 경제블록별 가상통화 발행까지 검토되고 있다.

가상통화의 미래에 대해 저자들은 섣불리 예측하지 않는다. 대신 정부의 갖가지 규제가 있을 것이며 가상통화 역시 소수의 통화가 독점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가상통화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다면, 기축통화의 역할은 가상통화가 넘겨받을 것이다. 저자들이 조심스레 꺼낸 ‘세계화폐’ 개념은 전 세계 사람이 하나가 되어 모두 세계시민으로 살게 되는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전 세계인이 경계 없이 살아가는 세계시민사회가 구현된다면, 가상통화는 세계시민을 위한 단 하나의 세계화폐가 되는 것이 타당하며 이는 가상통화의 창시자인 나카모토 사토시의 염원일 것이라고 말한다. 가상통화가 미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가상통화 시장이 침체기를 맞은 지금, 그간 투자의 수단으로서만 가상통화를 봐왔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책은 가상통화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돕는 안내서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