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 피터 플레밍 지음, 박영준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서점에 가보면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를 다룬 책들이 여럿 나와 있다. 그 가운데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가장 명쾌한 설명은 파리1대학 다니엘 코엔 교수의 로빈슨 크루소 비유일 것 같다. 코엔 교수는 “무인도에서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최대의 이윤을 추구한 합리적 이성의 인간형 '로빈슨 크루소'야말로 경제성장이란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체현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전형”이라고 꼽는다.

지금까지 출간된 서적들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특징을 소개하거나 결함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코엔 교수의 저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새로운 시대에 방황하는 선구자> (에쎄 펴냄)도 경제를 중심으로 사회가 발전하면서 호모 에티쿠스(윤리적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가 사라졌다고 개탄하는 내용이었다.

코엔 교수는 본지의 서평(“왜 GE는 잭 웰치의 ‘상대평가제’를 버렸나?”)에서도 다뤘던 기업들의 비인간적인 '성과주의'를 사례로 들었다. 실제로 GE의 잭 웰치가 주도했던 ‘10% 룰(Rule)’은 조직 내 상대평가에 따라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 해도 하위 10%에 해당되면 가차 없이 퇴출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이러한 비정한 순위평가 시스템 하에서는 생산성을 제외한 윤리나 공감은 한가한 사치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시각은 더욱 심각하다. 저자 피터 플레밍은 ‘새로운 암흑시대’가 개막됐다면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그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살아 있는 듯하지만, 실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판단한다. 신고전주의 학설에 따르면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자기 제어와 자유를 상징하지만 개인을 억압하는 관료주의 사회에서 이를 실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장경제 옹호자들과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주입한다. 그러나 상위 1%가 아닌 99%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할수록 더 가난해진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불평등 구조는 더욱 심화됐다. 1%의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무너진 사회 구조의 재구축 비용은 부자가 아닌 사회 하위 계층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지난 200여년간 자신들이 세계 성장의 주역인 줄 착각했지만, 어느덧 자본가들이 만든 불평등 구조의 최하층부로 떨어져 허우적대고 있다. 최저임금제, 기본소득, 각종 복지 정책으로도 구조의 밑바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 와중에 밀레니얼(Millennials) 세대, 즉 1981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노동자들은 앞선 세대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이들은 끝없는 대출과 상환이라는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가혹한 고용 시장에서 시달리면서도 노인연금 수급자들보다 임금이 적다. 밀레니얼 세대는 인종과 계급 차별 못지않은, 세대의 차별을 겪는다. 자신의 부모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가 됐다. 이 것이 가장 젊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상이다.

과연, 노동은 신성한 것인가?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안타깝지만, 이같은 숭고한 노동 본연의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오로지 더 많은 소비와 축적을 위해 관습적으로 노동을 한다.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돈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존재가 됐다. 플레밍 교수는 “노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연극”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저자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각성’을 촉구한다. 무엇보다 먼저 “1%를 위해 만들어진 경제의 창백한 그늘에서 빠져 나오고, 자본주의의 존재론적 ‘우선권’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체제를 당연시하진 말라는 뜻이다. 이어 “보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맹목적으로 경쟁하고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을 거부하라”고 지적한다. 해법이 개인화되어 있어 미진하지만, 나름 설득력은 있다.

이 책은 예언서 같은 글로 끝을 맺는다. “갈수록 혹독해지는 이 쇠약한 세계의 겨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획일적이고 무미건조한 무(無)의 상태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여정에 필요한 승차권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미래를 다시 시작하고 역사를 이뤄내기 위해 올바른 태세를 갖춰야 한다.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