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중국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장치) 여파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한·중 관계가 회복되면서 상황은 나아지는 듯했다. 이후 지배구조개편을 통해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미래성장동력 기반을 마련하려 했지만 외국 투기자본을 만나면서 무산됐다.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에 관세 폭탄을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둔화되면서 업체 간 경쟁 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긍정적 환경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불리한 대내외 환경에 둘러싸인 현대차그룹이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있을지 주목된다.

▲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

5월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1.9% 감소한 4조5747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서는 일부 차종의 생산 차질에도 신차 출시에 힘입어 전년 대비 4.6% 늘어난 68만8939대가 판매됐다. 반면, 해외서는 중국 시장이 사드 보복 등의 어려움을 겪으며 같은 기간 8.2% 감소한 381만7588대 판매에 그쳤다.

기아자동차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작년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3% 급감한 6622억원으로 나타났다. 사드 보복에 통상임금 소송 여파가 더해진 결과다.

▲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중국 시장 판매 우려는 올 들어 해소되는 모습이다. 지난 4월 현대·기아차의 전 세계 판매대수(63만1225대)는 전년 동기 대비 10.4% 늘었다. 같은 기간 중국 시장에서는 무려 101.9% 증가한 10만3109대를 판매하며 사드 보복 우려를 씻어냈다.

지배구조 개편 압박과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

국내 대기업 집단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낮은 배당성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주주친화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정부는 재벌기업에 지배구조개편을 촉구했다. 경영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각 기업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따라 주가도 크게 움직였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3월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고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도 해소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제동을 걸었다. 지배구조 개편안이 지분율 측면에서 총수 일가에 유리하고 현대모비스 주주 등에는 불리하다는 주장이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스루이스도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를 권고하고 나섰다. 국내 자문사인 서스틴 인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등도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에 부정으로 평가했다.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편안 통과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것은 현대모비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9.8%)이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까지 합병 반대를 권고하자 분위기는 180도 돌변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셈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미흡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왜 미흡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취지는 좋지만 다급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면서 “외국 투기자본이 그 틈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고 그 결과 현대차그룹의 신뢰성은 일부 실추됐다”고 평가했다.

 

자동차 산업, 수요 둔화·비용압박… 관세 폭탄 우려까지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구상 중이다.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주주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을 압박한 공정위도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한 발 물러난 상황이다.

▲ 출처:하이투자증권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시간을 벌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성장을 방해하는 암초는 수두룩하다. 5월 23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입산 자동차와 트럭, 부품 등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시작할 것을 지시했다. 수입차 관세를 2.5%에서 25%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한·미FTA 재협상 타결로 무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우려가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령 관세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도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2분기 이후 현대기아차는 미국 내 높은 인센티브 지출에도 판매부진이 이어졌다. 미국 공장의 가동률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실적 반등을 위해서는 결국 미국 판매 회복이 필수다.

문제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 규모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까지 수요를 이끈 북미, 유럽, 중국 등 주요 지역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에 의한 수익성 저하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또 차량 한 대당 원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자동차 업체들이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부품과 ADAS(첨단운전자지원) 등 편의 사양 장비 적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도 2018년 이후 출시되는 모든 차종에 ADAS를 기본 장착하고 있다. 유럽과 국내에 출시할 모든 디젤차에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을 채택해 비용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차 등 미래차 개발을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뿐만 아니라 친환경차는 높은 배터리 가격과 낮은 생산 볼륨, 높은 판매보증충당금 등으로 인해 초기 수익성이 저해된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친환경차 판매 확대는 나아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출시 초기 개발비 상각 비용 부담이 상당해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는 픽업 트럭 등 라인업 부재로 경쟁 열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