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내달 1일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합병 절차를 마무리한다. 지지부진한 중국 반독점 당국의 허가가 떨어진 후 인수합병 행보가 전광석화처럼 빨라지는 분위기다. 본게임은 지금부터라는 말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30일 총 투자액 3조9200억원 중 2조6453억원을 판게아에 송금했다. 판게아는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며, 나머지 투자액 1조2800억원은 전환사채 방식으로 투자할 예정이다.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위해 약 19조5000억원의 실탄을 준비한 가운데 SK하이닉스는 약 15% 수준의 의결권 지분율을 확보할 전망이다.

▲ 도시바 매각이 완료수순에 접어들었다. 출처=픽사베이

반전의 반전 거듭한 인수전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전은 굴곡이 많았다.

대만 폭스콘이 일본 디스플레이 기업인 샤프를 인수한 후, 현지에서는 외국기업의 자국기업 인수를 두고 부정적인 기류가 심해졌다. 폭스콘이 샤프를 인수한 후 약속했던 고용승계를 포기하고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노릴 당시에도 현지 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베인캐피털과 팀을 짠 SK하이닉스는 특히 경계대상으로 인식됐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와 경쟁하는 라이벌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정부가 나서 SK하이닉스를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일본 정부는 현지 언론을 통해 SK하이닉스가 인수합병에 나서도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결국 SK하이닉스가 빠지고 한일연합이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의 유력 후보군으로 부상했다. 도시바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던 웨스턴디지털의 존재감도 커졌다.

최태원 SK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해 6월초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가 KKR 대신 일본 산학혁신기구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들어가는 한편, 최태원 회장은 일본으로 날아가 도시바 임원들과 담판을 벌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며, 당시 구체적인 컨소시엄 지분도 공개됐다. 인수 계약이 6월27일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의 낙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7월 초 이면합의 논란이 인수합병 정국을 새롭게 강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한미일 연합 내부의 이면합의가 존재한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해 7월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인수에 참여했다”면서  “도시바와 상호 보완적인 관계 구축을 원하고 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하며 논란을 종식시키는데 집중했다.

웨스턴디지털도 움직였다. 이들은 도시바와의 오랜 협력관계를 내세우며 한미일 연합의 인수 시도가 불법이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결국 KKR은 웨스턴디지털과 손잡고 인수 우선협상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한미일 연합 최고의 위기가 바로 이때다.

궁지에 몰리 한미일 연합은 빠르게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바로 애플이다.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털이 KKR 대신 애플을 섭외하는데 성공했으며 시게이트, 델 등 미국 IT 회사까지 아우르는 위용까지 갖췄다. 애플은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를 인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낸드플래시를 도시바에서 공급받지 않겠다는 엄포를 놨고, 결국 한미일 연합은 다시 인수협상의 주도권을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지난해 9월20일 도시바 이사회는 한미일 연합에 메모리 사업부를 매각하기로 공식 결정한다.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의 9부능선을 넘었으나 험로가 끝난것은 아니었다. 각국의 반독점 심사가 진행되며 유독 중국이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중국 규제 당국은 지난 3월31일 1차 매각 시한을 넘긴 데 이어 2차 시한인 1일에도 도시바 매각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도시바의 재정상황이 좋아졌고, 굳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를 매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미일 연합은 꾸준하게 중국 반독점 당국을 설득했고, 결국 지난 17일 중국 반독점 당국은 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SK하이닉스,기술력으로 승부내야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에 나서며, SK하이닉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업계는 SK하이닉스와 도시바가 당장 메모리 반도체, 특히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화학적인 시너지를 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인수가 마무리돼도 SK하이닉스는 향후 10년간 의결권 지분 15% 이하 제재를 받으며 기밀정보 접근도 차단되기 때문이다. 중장기적 측면에서 미래를 노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이 주춤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낸드플래시 시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3% 줄어들었으며 도시바를 제외하고 톱5 기업 모두 매출이 줄었다. 삼성전자는 시장 점유율 37%로 1위를 지켰고 2위 도시바가 19.3%, SK하이닉스는 9.8%의 점유율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출렁이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맥'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기술력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3월 중국 시안에 약 7조50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하는 한편, 연내 5세대 96단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장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을 적절히 활용하며 낸드플래시 시장의 민감한 흐름을 감지, 기술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는 연내 96단 낸드플래시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 양산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