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평균 22개. 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의 개수다. 1990년대 평균 10개 내외이던 가전제품 수는 20여년 만에 2배를 넘어섰다. 과거 ‘백색가전’, ‘갈색가전’으로 나뉜 가전제품은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주방가전, 세탁가전, 욕실가전, 건강가전 등 공간과 용도의 개념으로 가전제품이 세분화 되면서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건강가전’으로 불리는 공기청정기, 스타일러, 빨래 건조기 등 중심으로 가전제품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을 미세먼지와 이상고온 등 기후변화, 그리고 구매에서 렌털로의 소비 변화를 꼽고 있다.

미세먼지와 이상고온 등 가전 시장 지형도 바꾸다

이상고온 현상과 미세먼지, 건조한 실내 환경 등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생활 가전’이 생기는가 하면, ‘세컨드 가전’들이 필수 가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봄철 불청객인 황사와 미세먼지는 이제는 ‘철없이’ 계절을 불문하고 연일 하늘을 뒤덮고 있다. 매일 아침 미세먼지 관련 뉴스를 확인하고 실내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는 등 시민들의 생활습관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 최근 미세먼지가 문제가 심각해지자 과거 '세컨드 가전'으로 불리던 공기청정기, 의류건조기, 의류관리기 등이 필수 가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출처= 셔터스톡

실내 환기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실내 공기 오염이 실외 대비 수십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도 나왔다. 이에 쾌적한 실내 환경 관리를 위한 공기청정기와 유선청소기보다 기동성이 좋은 무선청소기는 판매량이 날로 급증하면서 ‘세컨드 가전’의 지위를 벗어나 TV, 세탁기 등과 함께 필수가전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의류관리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외출 때 입은 옷을 제대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실내 공기 오염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의류의 청결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의류관리기는 지난 2011년 LG전자에서 ‘트롬 스타일러’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 출시 당시에는 빨기 힘든 겉옷이나 손상되기 쉬운 옷을 관리해준다는 인식이 컸고, 세탁소에 옷을 맡겨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제품이었다. 스타일러의 출시는 전에 없던 새로운 제품이기 때문에 반응은 뜨거웠으나 필수 가전은 아니었다.

최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면서 한 마디로 모든 게 달라졌다. 출시 당시보다 더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구매부터 렌털까지 이용 방법도 다양해졌다. 수요가 커지자 LG전자 외 다른 제조사들에서도 의류관리기를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세탁기의 건조 기능도 따로 분리돼 의류건조기로 독립했다. 세탁기의 부가 기능이던 건조 기능은 말 그대로 단순 건조가 목적이었다. 건조기는 건조 외에도 살균과 먼지·보풀제거 등의 기능이 더해져 실내 건조 시 발생할 수 있는 먼지를 줄일 수 있다. 또 사용하는 드럼세탁기 위에 설치할 수 있어 따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전기 외에도 가스식 제품이 나와 유지비는 줄이고 건조시간은 짧아져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주거공간의 변화도 건조기 보급률을 높이는 데 주효했다. 2000년대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아파트 간 간격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맞은편 아파트에 가려져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 주상복합아파트는 베란다가 없는 곳이 많고 일반 아파트도 베란다를 확장하는 곳이 많아 빨래를 건조시킬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 때문에 세탁기의 부가 기능을 사용해 건조를 하던 소비자들의 건조기 구매가 이어지고 있다.

가전 트렌드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세먼지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일최고기온이 섭씨 26도를 넘어서면서 초여름과 같은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졌다. 지난달에는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이에 전통 가전이던 에어컨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 단순히 냉방의 기능만 있는 에어컨은 최근 냉난방에 제습·공기청정 기능을 하나로 모아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경숙 산업연구위원(KIET) 연구위원은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이와 함께 소득 수준도 높아져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겨 환경변화와 소득수준이 맞물리면서 신제품이 나오고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렌털 활성화도 가전시장 성장 동력

과거 사서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빌려 쓰는 시대로 급변하면서 가장 크게 성장한 것은 바로 가전제품시장이다. 그중에서도 ‘세컨 가전’이라 불리는 제품들이 필수 가전의 대열에 올라서면서 한 번에 구매하기 힘든 소비자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있다.

▲ 국내 렌털시장 규모는 6년 사이 47.1% 성장했다. 출처= KT경제경영연구소

렌털 이용의 장점은 제품을 많이 사용할수록 가격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6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혜진(31세, 여) 씨는 “냉장고, TV, 세탁기 등 정말 필요에 따라 사야 하는 가전제품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면서 “요새 워낙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공기청정기, 의류건조기 등도 필요해 렌털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건강관련 제품은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렌털을 하면 관리를 해주고 여러 개 이용 시 가격도 더 낮아져 효율적이다”라고 덧붙였다.

KT경제경영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렌털 시장 규모는 지난 2011년 19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28조7000억원으로 6년 새 무려 47.1%나 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과거 정수기를 토대로 성장한 렌털 시장은 생활가전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면서 “렌털은 고가의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초기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고, 렌털업체 매니저가 직접 집으로 방문해 정기적인 관리를 해줘 오랫동안 안심하고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렌털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