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흥국 통화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남유럽과 동유럽에 대한 시장 불안감이 고조되고, 동남아 신흥국에서의 자본 이탈이 두드러지면서 신흥국 6월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출처= everyinvesto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등 신흥국 통화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남유럽과 동유럽 시장 불안감이 고조되고, 동남아 신흥국에 투자된 자본 이탈이 두드러지면서 글로벌 투자자금의 미국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최근 보도했다. 이와 함께 신흥국 6월 위기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불안한 이탈리아 정정(政情) 동유럽까지 파급

유럽 금융시장은 연일 요동치고 있다.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3·4위 경제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부각되면서 유로화가치는 작년 11월 이후 6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FTSE MIB지수와 스페인 IBEX 35지수는 각각 2.6%, 2.5% 급락했다. 특히 FTSE MIB 지수는 닷새 연속 하락으로 10여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시장의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지표로 꼽히는 독일과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 차(스프레드)는 오전 한때 320bp까지 치솟았다.

▲ 시장의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지표로 꼽히는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9일 오전 한때 320bp까지 치솟았다.      출처= Bloomberg 캡처

이냐치오 비스코 이탈리아은행 총재는 경제 상황을 브리핑하는 연설에서 "이탈리아는 '신뢰'라는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을 잃을 위험에 바짝 다가서 있다"며 "경제 위기가 닥쳐 자산 가치 상실이 예상될 경우 투자자들이 앞다퉈 떠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유럽 국가는 EU가 300억유로 규모의 지원금을 남유럽 국가에 돌리는 결속기금 개혁안을 내놓기로 하면서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에 대한 지원금이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동유럽 국가의 달러 대비 통화 가치는 2월 이후 폴란드(11.4%), 헝가리(10.9%), 체코(10.0%), 불가리아(7.6%) 등이 10% 안팎까지 떨어졌다.

▲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FTSE MIB지수는 2.6% 급락했다.       출처= 구글

브라질 트럭 파업 피해 11조원, 경제 붕괴 조짐

브라질 금융시장은 21일 이후 9일째 계속된 트럭운전사 파업 여파로 큰 혼란에 빠졌다. 28일 달러화에 대한  헤알화 가치는 지난 25일보다 1.64% 떨어졌다. 외환 전문가들은 오는 10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파업 사태까지 겹쳐 헤알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파울루 보베스파 지수도 4.49% 급락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이후 5개월여 만에 최저치다. 우량주인 페트로브라스 주가가 14% 넘게 떨어지면서 지수를 끌어내렸다. 국영전력회사 엘레트로브라스 주가도 9.5% 하락하는 등 자원·에너지 관련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국영은행 방쿠 두 브라지우 주가가 7.3% 떨어지는 등 금융주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브라질 정부는 트럭운전사 파업으 교통·물류의 대란이 야기되고 그로 인해 약 400억 헤알, 우리 돈 11조원 상당의 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브라질 정부는 트럭운전사 파업으 교통·물류의 대란이 야기되고 그로 인해 약 400억 헤알, 우리 돈 11조원 상당의 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출처= viralnews.tv

베트남 증시, 한 달 새 23% 하락

베트남 증시가 지난 1년 동안 착실하게 쌓아온 상승폭을 무너뜨리는 데는 6일이면 충분했다. 지난해 베트남 증시가 급등하며 불었던 베트남 펀드 열풍은 신흥국 불안에 최근 현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암호화폐 사기 사건의 영향으로 차갑게 식었다.

지난해 48%나 상승한 VN지수는 올 들어서도 상승 추세를 이어갔으나 올해 4월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걸으며 한 달 동안 고점 대비 무려 23% 곤두박질 쳤다.

베트남 증시 하락 요인으로는 급격한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 욕구도 있지만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따라 신흥국 투자 매력이 줄어들면서 외국인 매도세가 투자 심리를 위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암호화폐 사기 사건이 한 몫 했다.

▲ 지난해 48%나 상승한 VN지수는 올해 4월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걸으며 한 달 동안 고점 대비 무려 23% 곤두박질 쳤다.       출처= Bloomberg캡처

아르헨, 터키, 인도네시아 불안도 여전

아르헨티나의 페소화 가치는 이달 들어 17% 하락했고, 물가는 20% 넘게 상승했다. 통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40%대까지 끌어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달러짜리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터키와 인도네시아 외환시장도 불안하다. 터키의 리라화 환율은 지난 23일 달러당 4.9285리라를 기록,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한 달 사이 환율이 15% 넘게 올랐다(리라화 가치 하락). 터키 중앙은행이 복잡한 자국의 기준금리 제도를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29일 4.5805리라로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환율은 지난 21일 달러당 1만 4203루피아를 기록, 31개월 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28일 기준으로 1만 4120 루피아로 다소 완화됐지만 연초 대비 4.07%나 상승한 수준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새로운 신흥시장으로 주목받았던 아프리카에서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고개 들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채는 올 들어 처음 순 매도세로 돌아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남아공 국채가 4930억랜드(약 380억달러) 순 매도를 기록했다. 연초 4850억랜드 순 매수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남아공 국채는 다른 나라 국채보다 비교적 거래가 쉬워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과거 금융위기 때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으로부터 받았던 대규모 차관을 고려하면 실제 부채는 공식 통계치보다 20% 정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신흥국발 세 번째 위기’를 경고했다. 라인하트 교수는 “신흥시장이 처한 전반적인 상황이 과거 금융위기 때보다 나쁘다”면서 “재정이 불투명한 아프리카의 저소득 신흥국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 몰리는 돈

시장조사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지난 10년간 미국 주식펀드와 비(非)미국 주식펀드에 약 1 대 2 비율로 투자해 왔다(지난 해에는 1 대 4 수준까지 올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국 투자회사협회(ICI)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에서 해외 주식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80억달러로, 2016년 12월 이래 가장 적었다. 이 달 들어서는 미국 펀드로 들어온 자금이 44억달러로, 해외 펀드(36억달러)를 앞질렀다.

WSJ에 따르면 미 기업들의 올해 1분기 평균 이익은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지난 4월 실업률은 3.9%로 17년여 만에 가장 낮았다. 미국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대표적인 미국 투자 상장지수펀드(ETF)로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SPDR S&P500 ETF’는 이 달에만 2.9%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 주식에 투자하는 대표 ETF인 ‘아이셰어즈 MSCI 유로존 ETF’는 2% 하락했고, 신흥국 주가지수에 연동되는 ‘아이셰어즈 코어 신흥국 ETF’도 1.1% 떨어졌다.

"위기 파급력 크지 않다" 지적도

이 모든 위기설의 배경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서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이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9일(현지시간) 94.86을 기록하면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달러 현상이 계속되면 달러화로 표시된 빚 부담이 커진다. 모건스탠리 캐피털이 발표하는 세계적인 주가지수인 MSCI 신흥국 지수에 포함된 845개 기업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12월 기준 100.6%를 기록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80.1%)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신흥국 전체가 다시 위기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터키 상황이 나빠진 것은 재정이 취약한 데다 정치적 신뢰 문제까지 불거진 탓이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도 “경제 상황이 취약한 상황에서 외환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했고, 가뭄에 따른 대두 수확량이 감소한 것도 사태를 키웠지만, 아르헨티나발 금융시장 혼란이 중남미 다른 국가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무디스는 분석했다.

IMF에 따르면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도 지난 2013년 때와는 달리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크게 줄면서 펀더멘털(경제 기초 여건)이 개선됐다. 브라질의 외환 보유액은 2008년 1957억달러에서 2008년 3653억달러(약 396조원)로 증가했다. 이번 위기설은 미국 주택 시장 문제와 버냉키 쇼크에서 시작됐던 글로벌 금융위기, 긴축발작(taper tantrum) 당시와는 달라 파급력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