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초기 산업혁명 시절 광산의 광부들은 작업을 위해 갱도로 들어갈 때 카나리아 한 마리를 데려갔다. 갱도의 특성상 밀폐된 공간에서 장기간 작업을 하면 유독가스나 공기의 변화를 눈치채기 어렵지만, 카나리아는 민감하게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나리아가 갑자기 울면 광부들은 작업을 멈추고 갱도에서 탈출해 큰 사고를 막았다고 한다. 경제학계에서 자주 인용하는 '광산의 카나리아 효과'다.

▲ 갤럭시S9 중국 출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광산의 카나리아, 스마트폰 산업

국내 수출 지수는 꾸준한 호조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국내 총 수출액은 291억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4.8%나 증가했다. 반도체 수퍼 사이클 효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 호황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광업제조업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조사 대상인 68개 제조 업종 중 무려 53개 업종의 가동률이 1년 전과 비교해 하락했으며 제조업 취업자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반도체와 석유제품을 중심으로 수출 호조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국내 경제를 책임지던 핵심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는 장면은 묵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조업의 위기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특히 ICT 기술과 제조업의 만남으로 탄생한 스마트폰 산업 위기에 시선이 집중된다. 현재 국내 스마트폰 산업은 단말마를 울리며 제조업의 위기를 알리는 광산의 카나리아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9일(현지시각)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가 20.5%로 1위를 기록했으며 애플이 14.1%로 2위에 이름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3위부터 5위까지는 모두 중국 제조사다. 화웨이가 10.5%, 샤오미 7.4%, 오포가 7.3%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전체 스마트폰 시장은 지난해 4분기까지 4% 역성장을 기록했으나 올해 1분기 1% 성장으로 반등했다.

삼성전자가 여전히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으나, 톱5의 기업 중 5위 오포와 함께 점유율이 하락한 점은 불안요소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분기 20.8%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올해 1분기 20.5%를 기록, 0.3%의 점유율이 하락했다. 반면 애플은 지난해 1분기 13.7%에서 올해 14.1%로, 같은 기간 화웨이는 9.0%에서 10.5%로 점유율이 상승했다. 5위 오포는 지난해 1분기 8.2%에서 올해 1분기 7.3%로 하락했으나 4위 샤오미의 성장세가 대단하다. 지난해 1분기 3.4%에서 올해 1분기 무려 7.4%를 기록해 약 2배 성장했다.

▲ 프랑스에 문을 연 샤오미 매장에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다소 성장했음에도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하락한 대목이 뼈 아프다. 더 큰 문제는 점유율 역전이다. LG전자가 톱5에 들어가지 못한 가운데 한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처음으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 밀렸기 때문이다.

가트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 3대 제조사인 화웨이와 샤오미, 오포의 점유율 총합은 25.2%로 20.5%의 삼성전자를 눌렀다. 지난해 중국 3대 제조사 점유율 총합은 20.6%에 불과했으나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부진한 사이 점유율을 무려 4.6%포인트나 늘렸다.

스마트폰 주요 시장의 상황도 비상등 일색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분기 기준 1.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톱5에서 크게 밀렸다. 2013년 당시만 해도 점유율 20%로 1위를 달렸으나 샤오미에 일격을 당한 후 화웨이, 비보, 오포의 공세에 연이어 주춤했기 때문이다. 신흥 시장인 인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분기 샤오미에 1위를 빼앗긴 후 올해 1분기에도 26.2%의 점유율로 31.1%의 샤오미에게 일격을 당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애플에 크게 밀리고 있다.

▲ 이재용 부회장이 중국 선전 출장 중 샤오미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웨이보

미래는 더 암울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래마저 불투명한 대목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점유율이 하락할 전망이다. SA는 "올해 1분기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하량은 많이 잡아도 5000만대 수준"이라면서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14%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을 포함한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격전이 치열해지며 경쟁자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화웨이의 미국 스마트폰 시장 진출은 막혔지만, 최근 기업 공개에 나선 샤오미가 유럽 시장을 정조준하는 등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화웨이는 유럽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부상한 지 오래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며 삼성전자 갤럭시 신화가 흔들리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뾰족한 수'도 요원하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하량이 감소하며 주력 라인업의 동력이 떨어지는데다 하드웨어 폼팩터의 비전도 한계에 이르렀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반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한편 중저가 스마트폰 라인업을 늘려 점유율 확보 전쟁에 나서도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현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수익의 80%를 애플이 가져가는 장면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이, 중저가 시장은 중국 제조사들이 차근차근 외연을 확장하며 삼성전자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 화웨이는 국내 홍대에도 직영점을 설치했다. 출처=화웨이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최신 기술 트렌드에서 반박자 늦은 행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화웨이는 지난해 기린 970 모바일 AP를 통해 인공지능 스마트폰 시대를 처음으로 활짝 열었다.

하드웨어 폼팩터 진화의 최종형으로 불리는 폴더블 스마트폰도 화웨이의 손에서 처음 탄생할 전망이다. 현재 화웨이는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를 위협하고 있는 중국 BOE와 협력, 오는 11월 최초의 폴더블 스마트폰을 공개할 예정이다.

글로벌 스마트폰의 대세인 베젤리스 스마트폰도 중국이 앞서고 있다. 현재 중국 제조사들의 베젤리스 평균 비중은 90% 후반대며, 삼성전자의 갤럭시는 90% 초반에 그쳤다.

▲ 베젤리스에 이어 노치리스 디자인이 중국 제조사의 손에서 설계되고 있다. 출처=웨이보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독립도 생각보다 더디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동맹군의 중요한 기둥으로 활약하면서도 바다 운영체제를 타진하는 등 소프트웨어 독립을 노린 바 있다. 바다 운영체제가 철저하게 실패한 후에도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 Z 시리즈를 출시하며 타이젠 운영체제를 의욕적으로 키웠다. 최근에는 타이젠을 Z 시리즈와 웨어러블에 장착하면서 명맥을 이어왔으나, 조만간 출시될 삼성전자의 새로운 스마트워치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애플워치에 대항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지만, 삼성전자의 야심찬 운영체제 독립은 무위로 끝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와 함께 뛰며 경쟁과 상생을 반복해야 하는 LG전자 스마트폰 경쟁력은 현재 크게 떨어진 상태다. 국내와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LG G7 씽큐를 통해 움직이고 있으나 연속 적자 행진에 휘청이는 MC사업본부로는 LG G7 씽큐의 성공을 100% 장담하기 어렵다. LG V35 출시 등 파생 라인업 출시 등으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주축이 된 국내 스마트폰 경쟁력이 크게 흔들리는 장면은 곧 제조업의 위기를 집약해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시장의 과실은 애플이, 점유율은 중국이 가져가는 구조는 미국과 중국에 끼인 국내 제조업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상징한다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ICT 전자 제조업의 위기가 문제다. 스마트폰 경쟁력이 흔들리면 하방 산업군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옴니아의 실패 후 야심차게 등장해 시장을 평정한 갤럭시 신화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