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병 시절 직장 선배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두 명의 주연 배우 이름값만 하더라도 엄청나다는 생각이었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히트>(Heat)라는 영화로, 당시엔 드물게 세 시간에 가까운 171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했다. 공포물을 제외하고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영화를 섭렵하던 필자였기에 전설적인 두 배우가 한 스크린을 주름잡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한참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 앉아있던 여성 관객이 지루했는지 일행들과 함께 연신 뭔가를 먹으며 작은 소음을 계속 냈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가방에서 오징어를 꺼내려 할 때였다. 오징어가 두꺼운 비닐봉지로 포장돼 있어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몰입에 방해받은 필자는 고개를 돌려서 살짝 주의를 줬다. 그런데도 바스락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참다못해 낮고 짧은 목소리로 한 마디 뱉었다. “그 참.” 그러자 같이 왔던 선배가 놀라서 필자를 막았다. 다행이 그는 만지작거리던 비닐봉지를 다시 가방에 넣고는 더는 소리 내지 않았다.

요샌 웬만한 영화는 두 시간이 넘기기 일쑤지만, 세 시간 정도 되는 영화는 흔하지 않다. 우리가 영화에 두 시간, 세 시간 동안 집중하는 이유는 영화의 기승전결 흐름상 놓치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여기저기에 깔려있는 의미 있는 화면이나 짧은 대화가 암시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자칫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주는 최종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기 위해서 그 긴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제목에서부터 콱 던져주는 신문 VS 찔끔찔끔 풀어 놓는 영화

최근 마블사에서 상영한 ‘어벤저스’ 시리즈를 보고 나서 중학생 아들과 함께 허무하게 영화관을 나섰다. 이해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오역’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다시금 아들과 심각하게 영화에 대해 토론을 했고, 그제서야 제대로 된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란 그런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간 관객은 이미 두 시간 이상을 투자해서 영화를 보기로 작정을 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영화는 처음부터 많은 정보를 줄 필요 없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도 된다. 도입부에서는 나뭇잎, 하늘, 길거리, 창문, 지나다니는 차, 주인공의 눈동자 이렇게 아주 조금씩 정보를 풀어내놔도 사람들은 뭐라 하지 않는다. 영화관에 들어온 이상 영화를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영화에만 집중한다.

신문은 그렇지 않다. 직업적으로 신문에 집중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신문만을 위해서 절대적인 시간을 할애할 사람들은 별로 없다. 잠시 짬을 내거나,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신문을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문을 보는 그 순간에도 주위의 온갖 것들이 유혹을 한다. TV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휴대폰이 울리기도 하며,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군것질 거리에 손을 뻗고 있기도 하다. 사무실이라면 곧 회의가 있을 수도 있고, 모니터에서 메일 알람이 뜨거나, 상사나 옆자리 동료의 호출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은 제목부터 콱 관심을 잡지 못하면 잠깐의 시간도 주목하게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신문은 미괄식이 아니라 두괄식이 된다. 제목에서 콱, 그리고 첫 줄에서 이미 결론을 던져주고 시작한다.

회사에서 하는 보고는 신문 같아야 한다. 아주 가끔 영화 같은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가 20년 이상 오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신문이 제목과 리드를 통해 중요한 사항에 대한 정보를 속 시원하게 던져주고 가듯이 제대로 된 보고를 위해서는 첫 머리에서 결론을 팡 하고 던져주고, 그 다음에 기승전을 간략히 풀어 나가는 것이 성공하는 방법이다.

보고받는 사람이 영화를 보기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한 사람인양, 처음부터 사설을 풀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상사가 온전히 당신에게 집중하리라는 생각과 기대도 말아야 한다. 그가 집에서 무슨 불상사가 있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운지, 혼잡한 출근길에서 접촉사고라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출근해서 더 윗선으로부터 험한 소리를 듣거나, 심각한 주제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직 일이란 늘 그런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도 해야 할 바는 타당한 논리와 근거로 납득시켜야 한다. 때문에 신문처럼 보고를 하는 것이 방법이다. 주위의 수많은 관심거리들이 산재한 상황에서 주목도가 높은 결론부터 내지른 뒤, 가장 간단명료한 방법으로 기승전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물론 처음부터 당신의 기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고자 하는 상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정리해서 보고할까? 보고하고 정리할까?

김 차장은 오전에 일찍 출근을 해서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전날 오후에 프로젝트 주관사의 박 대리와 함께 금감원 담당자와 미팅을 했는데, 보고할 내용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렇게 한다면 업무 진행이 달라져야 하고, 또 저렇게 한다면 다른 경우의 수가 나오기 때문에 다이어리에 메모한 것들을 놓고 열심히 정리했다.

9시쯤 부사장이 출근했지만, 김 차장은 부사장 쪽은 쳐다 볼 새도 없이 계속 보고서 작성에 몰입했다. 보고서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미팅 결과를 보고할 생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0분을 기다리지 못한 부사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김 차장을 불렀다.

“김 차장, 어제 중요한 미팅을 했으면 바로 보고해야지 뭐 하고 있나?”

“지금 보고서를 준비 중인데, 다 해서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

“급한데 무슨 보고서는 보고서야, 빨리 와서 결론부터 얘기해봐. 어떻게 됐어?”

결국 야단은 야단대로 듣고, 설명은 설명대로 다 하고, 자리로 돌아온 후 보고서는 작성해서 부사장에게 냈다. 중요한 미팅을 하며 전날 고생하고, 아침 일찍부터 보고서 쓰느라 고생을 했지만, 싫은 소리만 잔뜩 들은 김 차장은 종일 찜찜했다.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좋은 소리 못 듣는 때가 대부분 이런 경우다. 한 번에 완벽하게 잘 끝내야지 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불상사다.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들고 가서 한 번에 끝내려는 생각이 고생해 놓고도 싫은 소리를 부르게 된다. 구두로 보고하자니 ‘정리해 와’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것 같고, 작성해서 보고하자니 ‘꾸물댄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효과적인 방법은 상사의 궁금증부터 먼저 해결하는 것이다. 신문 기사와 같이 결론이 궁금한 점이다. 상사가 오기 전에 정리해 두는 것이 좋긴 하겠지만, 물리적으로 그럴 형편이 안 될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적당한 타이밍을 먼저 살피자. 출근과 동시에 바로 상사 자리로 가는 것이 때로는 좋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제 막 러시아워를 뚫고 자리로 온 상사에게도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직후가 좋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고 상세한 것은 정리해서 드리겠다면서 상사의 궁금증부터 먼저 해결하는 것이 방법이다.

일단 급한 궁금증이 해결되면, 그 다음엔 기다릴 수 있게 된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에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보고서는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상사를 기다리지 않게 하고, 궁금증으로 고민하게 하지 않게 적절한 타이밍에 결론을 먼저 주면 자연스레 다음에 뒤따르는 말이 있다.

“고생했구먼, 보고서는 정리되는 대로 주게.”

직장인은 이렇게 칭찬을 듣는 재미로 일을 한다. 한 달의 보수에만 매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날그날 진행되는 일에 대한 칭찬이 열정에 계속 불을 지피는 것이다. 현명한 보고는 열정이라는 불꽃이 계속 타오르도록 칭찬이라는 땔감이 결과물로 나온다. 하지만 방심한 틈에 돌아오는 싫은 소리는 열정이라는 불꽃을 꺼지게 만드는 물벼락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