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매년 1월 미국에서 열리는 CES를 비롯해 유럽의 MWC, IFA 행사가 열리면 반드시 나오는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존재감에 대한 내용입니다. 대부분 "중국의 ICT 기술력, 상당하다"는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업계에서는 "상당한 수준이 아니라 우리를 이미 넘어섰다"고 반박합니다. 여기에는 "아직도 중국을 하수로 보는가. 어리석도다"는 묘한 불편함도 감지됩니다.

 

최근에는 묘한 불편함이 대세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8일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밀린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 기술력이 100이라면 미국은 130, 일본은 117, 중국은 108이라고 합니다. 중국과 비교해보면 현재 한국은총 12개 부야에서 5개 분야 우위, 2개 분야 경합, 5개 분야에서 뒤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 ICT 기술력이 뒤지고 있다"는 말. 이제 현실입니다. 최근에는 ICT 전자 기술력의 집합체인 스마트폰 영역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세계 최초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글로벌 LCD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를 밀어낸 중국의 BOE가 화웨이와 협력해 최초의 폴더블 스마트폰을 오는 11월 공개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스마트폰 하드웨어 폼팩터의 한계가 명확해지고 확장성도 정체된 상태에서, 화웨이가 폴더블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사실은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줬습니다.

당초 화웨이는 LG디스플레이와 협력하려고 했으나, 자국 기업인 BOE와 협력해 중국 ICT 제조 기술력을 세계 최초의 무대에 올리기로 합의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미 화웨이가 부품 수급을 위한 행보에 돌입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인 삼성전자가 체면을 구기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화웨이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반도체를 탑재한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공개한 역사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모바일 AP 기린 970이 들어간 메이트10입니다. 모바일 AP 제작은 LG전자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만, 화웨이는 기린 시리즈를 발전시키면서 기어이 기린 970에 온 디바이스 인공지능 플랫폼이라는 개념을 연결하는데 성공했다는 설명입니다.

▲ 기린 970 스펙이 보인다. 출처=화웨이

기린 970은 옥타코어(8-core)중앙처리장치(CPU)와 12개의 차세대 GPU 코어로 구동되며, 10나노미터(nm)의 신형 프로세스를 활용한 제품입니다. 클라우드 인공지능에에 온 디바이스(on device) 플랫폼을 구현했으며 기존의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 대비 한층 빠르고, 전력 소모가 적으며, 보안성이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NPU(Neural Network Processing Unit.신경망프로세서유닛)가 적용된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시스템온칩(System-on-Chip, SoC) 칩셋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자체 듀얼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ISP: Image Signal Processor)와 서드파티 앱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기술까지. 이 모든 것을 화웨이가 직접 기획하고 설계했습니다.

스마트폰 베젤리스 전쟁에서도 중국이 앞서갑니다. 샤오미 미믹스는 전면 디스플레이 비율이 91% 수준이며 비보는 조만간 99% 비율을 자랑하는 스마트폰 비보 넥스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는 내년 이와 비슷한 수준의 베젤리스 스마트폰을 공개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최근 레노버는 베젤리스를 넘어 노치리스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하드웨어 폼팩터의 진화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 노치리스가 적용된 스마트폰 이미지. 출처=웨이보

중국은 5G부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을 넘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을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사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앞으로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기술 격차에 대한 불안감은 차치해도, 최소한 제조 기술력 측면에서 보여지는 중국의 존재감을 필요이상으로 증폭시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중국이 막강한 경쟁력을 통해 세계 최초 스마트폰 폼팩터 진화를 예고하고 있으나, 여기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화웨이와 BOE의 결합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오는 11월 폴더블 스마트폰 공개를 목표로 삼았으나 삼성전자도 비슷한 시기에 공개합니다. 세부 기술력과 수율 등에 있어 누가 우위를 점할까요? 삼성전자는 차분하게 폴더블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있으며,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며칠 늦더라도 제대로 된 폴더블 스마트폰을 보여주겠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ICT 전자 기술력이 한국을 뛰어넘은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들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져간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시장이 붕괴하는 것도, 주도권이 날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약간의 영향은 미치겠지만 결국 제조업 기반의 ICT 기술력은 한국이 그나마 우위에 있습니다. 이견의 여지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중국의 공격적인 ICT 행보를 지나치게 경계하며 무리한 호들갑을 떤다면,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의 시간을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