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오각진 기업인/오화통 작가 ]“부러진 날개”
친구와 지방을 갔다 오며 여러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친구는 잘 키운 두 아들이 각기 살고 있는 미국을 다녀온 뒤였습니다.
귀향을 준비하는 친구가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을
하며 외로움을 살짝 비추었습니다.
그 말에 친구 호를 굽은 소나무로 하자고
너스레를 떨며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어보려 했습니다.
그러며 우리도 호 하나쯤 가질 나이가 되었다며 옛 어른들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글학자인 최현배는 외솔, 어부사시사의 윤선도 호는 고산으로
외(外)나 고(孤)로 외로움을 자처하고,
소나무나 산으로 자신의 의지를 밝힌 것 아니겠냐고 말이죠.
그러며 나를 돌아봅니다.
젊은 시절 칼릴 지브란에 꼿혔습니다.
세상에 대해 초월자처럼,선문답같이 얘기해주는 그의 말은
존재에 대해 나름 고민하던 젊은 나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내 필명을 그의 소설 제목인 ‘부러진 날개’로 했습니다.
지금 아내에게 연애 편지를 쓸 때도 마지막에는 그렇게 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헷갈렸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 어울릴 달달한 말 대신, 예언자에 나온 그의 시 구절 중
‘서로 사랑하라,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를 보내는 식였으니까요.
유치하다고 생각했을까요?아님 대책 없다고 했을까요?
‘5월에 사랑하지 않으면 목석이다’란 말이 있는데,
그 시절 그렇게 간신히 목석을 면했습니다.
최근 주말 소파에서 있었던 얘기입니다.
아내가 최근 막 끝난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다시 보면서도,
텔레비전의 채널권을 양보하지 않는 겁니다.
더구나 거기에 나온 아들뻘 되는 연하의 남자애를
오빠라 부르면서 말이죠.
내 유치의 청춘 시절을 견디고 넘어온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굽은 소나무 친구와
부러진 날개로 세상을 다시 날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