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운명이 걸린 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이로써 이 전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법정에 선 4번째 ‘대통령 출신 피고인’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는 이 전 대통령이 110억원 대 뇌물을 받고, 약 350억 원의 금액을 횡령했다는 것으로 지난 달 9일 기소가 된 이래 이 전 대통령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이번 첫 공판기일에 앞서 3차례의 공판준비기일이 있었지만, 형사소송법 상 법원이 필요에 따라 피고인을 소환하거나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출석하는 경우가 아닌 한 피고인이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첫 공판기일에서 인정신문을 통해 인적사항을 확인받은 이 전 대통령은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을 인정할지 여부를 밝히게 돼 있는 형사소송법 제286조 제1항에 따라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다. 한 마디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을 다투지 않겠지만, 무죄는 계속 주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 내용을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검사가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도 부인해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참고인을 증인으로 법정에 불러내어 진술의 신빙성을 다툰다’는 형사재판의 일반적인 소송전략과는 크게 다른 것이어서 이 전 대통령이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참고인들을 법정에 불러내어 그들을 추궁하는 것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될 수 있으며, 한 때 국정을 함께 한 사람과 다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것은 이 전 대통령 본인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법조계는 이 전 대통령의 선택을 ‘궁여지책’으로 판단하고 있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참고인의 진술을 증인신문 과정에서 다투지 않는 것은 피고인에게 보장된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증거로서 참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겠다는 것인데, 이 같은 방법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원의 심증을 이끌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전 대통령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에 동의를 하겠다는 것은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참고인, 특히 측근들을 불러 증인신문을 해 봤자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은 전혀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체념과 그럴 바에는 증인 소환 없이 언론의 관심을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시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오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와 아들 시형씨 역시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만큼, 자기가 모든 죄를 안고 사건을 조기에 종결지음으로써 다른 가족들까지 공범으로 몰리는 참화만큼은 피해보겠다는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에서 일관되게 사법절차에 협조하지 않았고, 심지어 궐석재판까지 자초하며 장외투쟁을 벌인 박 전 대통령이 결국 사법부로부터 징역 30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점도 이 전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23일 재판 당일 본인에게 주어진 10여분 간의 모두 진술 서두에서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 조사와 진술을 거부하고, 기소 후에는 재판도 거부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며 자기가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했으며 사법부의 판단 역시 존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표면으로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하며 무죄를 다툰다고는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모두 진술 내용이 암시하듯 이 전 대통령은 향후 재판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시의 업적까지 양형상 참작할만한 사유를 빠뜨림 없이 꼼꼼히 현출(現出.나타내 드러내는 것)하는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미 검찰이 유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재판부의 유죄 판단을 피할 수 없다면, 1차로는 법원의 선처를 통해 형량을 최소화하고 궁극으로는 사면까지 바라보는 게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