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행동주의 펀드가 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기업과 주주의 소통 부재에 따른 기업 가치 견해차로 차익거래 기회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업이 IR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의 등장으로 기업이 제 가치를 찾아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정책에 떠밀려 국내 그룹사들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 문제다.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도 중요하지만 행동주의 펀드 공격에 대한 대응책도 필요한 상황이다.

▲ 연도별 행동주의 펀드 추이[출처:JP모건]

최근 JP모간이 발표한 ‘아시아의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in Asia)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개입한 사례는 662건이다. 2011년 351건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268건에서 318건으로 늘었다. 18.7%(50건) 증가한 수치로 행동주의 펀드의 미국 내 활동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아시아 지역에서는 10건에서 106건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행동주의 펀드, 기업·주주 소통 부재 노린다

과거 미국이 행동주의 펀드의 주 무대가 된 것은 기업과 주주의 견해차로부터 시작됐다. 두 주체가 각각 생각하는 기업 가치도 달라졌고 행동주의 펀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행동주의 펀드가 ‘정당한’ 기업 가치를 부각시키며 이슈를 만들어내는 이유다.

유럽 기업은 미국 기업 대비 주주의 이사회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주주와의 소통은 물론 미국 기업 대비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한다. 기업과 주주의 의견차가 좁혀지는 만큼 주가를 통한 차익거래 기회도 적다. 행동주의 펀드가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미국 기업들의 IR(기업설명회) 자료가 투자자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아직 부족하지만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이유도 미국에서 ‘먹거리’(차익거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행동주의 펀드 아시아 지역 활동 추이 [출처:JP모건]

행동주의 펀드가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이 활발해진 이유가 기업과 주주간 소통 부재(차익거래 기회)에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IR만 봐도 기업과 주주간 소통이 많지 않다”며 “자금조달이 필요로 할 때만 IR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IR은 투자자와의 관계를 맺는 일이기 때문에 기업이 항상 관심을 두고 시장과 대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책에 쫓긴 지배구조 개편, 시장 먹잇감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는 닌텐도(일본 게임사)가 아닌 홍콩 행동주의 펀드인 오아시스 매니지먼트가 개발을 주도했다. 지난 2013~2015년 세스 피셔 오아시스 매니지먼트 회장은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대표에게 모바일게임 사업 시작을 촉구하는 서한을 총 3차례 보냈다. 오아시스 매니지먼트는 1% 수준의 닌텐도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기업 수익성·경쟁력 제고 및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축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는 가운데 정책과 맞물려 비효율적인 일본 기업들이 타겟이 됐다. 정책 추진 의도는 좋았지만 행동주의 펀드에게 시장을 열어준 셈이다.

한국의 상황도 경영 간섭 등 유사한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집단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낮은 배당성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주주 친화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개혁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 몇 년 간 재벌기업의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하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국내 주요 그룹사들은 지주사 전환 등으로 부응했다. 시장은 환영했고 증시에도 이러한 변화가 일부 반영됐다.

국내서는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올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합리한 합병비율을 지적한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타당하다. 기업 가치는 주관적 판단에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 ‘정책에 쫓긴 지배구조 개편’이 자리 잡고 있다. 그룹사의 투명 경영도 중요하지만 행동주의 펀드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 기업가치에 미치는 요인 설문조사 결과 [출처:한국 IR 협의회]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재벌기업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에서 여론에 편승해 정책을 추진한 점이 없지 않다”면서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하면서 기업이 제 가치를 찾아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부정적 요인에 대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경제의 주요축인 그룹사들이 과도한 간섭으로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기업에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간을 주고 기업은 주주와 소통을 강화하는 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