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야심차게 추진한 지배구조개편안을 철회했다. 시장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주주들과 소통을 강화해 재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방향과 시기는 제시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현대모비스의 합병비율을 재조정하거나 인적분활 뒤 상장을 거치는 방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주사 체제 전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현대차그룹의 ‘청사진’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개편안이 주주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에 시선이 쏠린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는 지난 3월28일 이사회 결의 이후 추진해온 분할·합병계약을 철회하고 방식을 재검토 중이다. 두 회사는 관련 안건을 논의할 주주총회 소집절차를 중단했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모비스의 핵심 사업인 모듈과 AS부품 사업을 인적분할 후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글래스루이스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현대차그룹 개편안을 반대했다. 합병 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게 선정됐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향후 개편 시나리오는?

금융투자업계는 향후 개편안에서 현대차그룹이 논란이 된 합병비율을 바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모비스에 너무 편승한 합병비율을 내놓는다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글로비스 지분(30%) 희석률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면서 지배력까지 유지해야 하는 오너일가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비스를 인적분할해 재상장한 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대로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비용 부담은 늘겠지만 대주주 이해관계에 따라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는 논란은 차단할 수 있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분할합병안 중단은 주주 동의 없이 기업 의사결정이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이 때문에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거나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먼저 상장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비스를 각각 사업 부문·투자부문으로 나누어 3사의 투자부문만 합병해 지주사를 만드는 ‘3사 분할·합병’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금산분리에 대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증권가에 나돌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선을 계속 추진하면서도, 기존 방안 틀에서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앞선 개편안의 최대 수혜주로 예상된 글로비스보다 모비스에 유리한 개편안이 나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박인우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향후 재추진 방안과 일정은 불투명하지만 기존 안의 일부 조정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도 “시간의 제약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안에서 일부 조정하는 합병비율 재산정을 고려할 만 하다”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합병비율을 재산정하거나 분할·합병·지분교환의 순서를 바꾸는 방법 등은 현대모비스 기업가치 평가에 기존 안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번 재추진 결정은 현대모비스가 급부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합병 과정에서 수혜 기대감이 컸던 글로비스에 개편안 재추진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현대모비스 주주들의 반대로 합병이 철회됐기 때문에 현대모비스 주주들을 달래는 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물론 대주주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서 글로비스가 급부상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11조2000억원)과 글로비스의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1조8000억원)차이가 이번 주주들의 찬반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다”면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글로비스의 시가총액을 상승 시킨 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가능성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글로비스를 키우는 방향의 개편안은 시간을 오래 끌면 가능성이 있다. 기존 안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으나 공정위가 앞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시한을 두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처럼 현대차가 시장 원하는 수준 합리적 대안 찾기 위해 여러 안을 검토할 농사가 크다.

재추진된 개편안의 주총 통과할 전망에는 긍정적이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08년부터 2009년 동안 진행됐던 현대모비스의 현대오토넷 흡수합병 때에도 공개매수 금액 범위 초과로 무산된 후 수개월 뒤 공개매수 금액과 합병비율 조정을 통해 재추진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서 “주주친서에도 재추진에 대한 의지를 명백히 드러낸 만큼 성공적인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실체 없는 '청사진'

자동차 시장에서 부품회사들은 완성차 업체 이상의 영향력을 지닌다. 내연기관이 중심이었던 자동차 시장이 미래차를 중심으로 빠르게 무게가 이동되고 있다.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친환경 전기차로 트렌드가 바뀌면서 자동차 회사의 기술력은 미래와 직결됐다.

현대차그룹의 기존 개편안에서 모비스를 글로벌 부품회사로 세우겠다는 계획만큼은 그룹의 미래를 키우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러나 모비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의 디테일이 부족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에 의존도가 너무 높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에 종속된 회사다. 내부매출 비중은 현대차 33%, 기아차 28.7%로 60%를 넘어선다. AS를 포함한 유통사업을 제외하고 부품 사업만 따로 본다면 90%에 육박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부품사들은 조금 다르다. 일본 덴소는 토요타 종속 관계지만 이를 탈피하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토요타 자동차가 덴소 매출에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까지 줄어들었다. 델파이나 보쉬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영업이익률은 델파이 9.2%, 덴소 7.3%, 보쉬 6.3%로 현대 모비스(5.7%)보다 높다.

문제는 모비스를 먹여 살리던 현대차와 기아차 판매부진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차의 1분기 매출액은 22조4365억원으로 전년 동기(23조3659억원)와 비교해 3.9% 감소했다. 별도기준 매출액은 9조67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조3175억원)과 비교해 6.2%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853억2400만원으로 전년 동기(7589억800만원) 대비 75.5%나 줄었고, 순이익은 4131억5900만원으로 전년(9673억7400만원)대비 57.2% 감소했다.

기아차의 별도기준 매출액은 7조1613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489억원)와 비교해 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53억85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868억3800만원)과 비교해 96.8% 줄었다, 순이익은 2685억2700만원으로 전년(8138억300만원) 대비 67%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통해 모비스 매출과 이익이 몇 배나 뛸 것이라 주장했다. 올해 모비스 예상 매출액이 25조원인데 내년에 36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2025년에는 44조원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업이익률은 델파이보다 앞서는 10%를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

사업부를 받는 글로비스와의 시너지 효과도 미미하다는 평가다. 글로비스의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취지에서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은 규제 리스크 완화에 초점을 두면서 사업적 시너지에 대한 설득이 부족했다”면서 “중장기 사업 시너지에 대한 설득과 더불어 완성차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애초에 합병비율과 가치평가 문제 프레임에 갇혀서 현대차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서 “모비스가 모듈사업을 떼어주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주들에게 동의를 요구한 것은 무리수였다”고 꼬집었다. 그는 “새로운 개편안을 내놓으면 주주친화정책은 물론 구체적인 청사진 제시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