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송현주 인턴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대내외로 경기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금융시장에선 경제지표 둔화와 경기침체 논란으로 '7월 인상론'에 힘이 빠지면서 4분기 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한국의 기준 금리 인상 시기가 지연되면서 양국간 금리격차가 확대되고 이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 또한 커진다는 점이다. 

한은은 24일 오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주재로 금통위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50%로 유지했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11월 1.25%에서 1.50%로 6년 5개월 만에 인상된 뒤 6개월째 유지됐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 동결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국내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당분간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압력은 높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1%의 물가상승은 물가급등으로 볼 수 없다"면서 "스테그플레이션(극심한 경기 침체와 물가의 급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그는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하며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통위는 향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변화와 주요국과의 교역 여건, 가계부채 증가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도 주의 깊게 살핀다는 계획이다.

기준금리 동결...예상된 결과

이번 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은 금융시장에서도 예상한 결과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8∼1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채권 관련 종사자 100명 가운데 93%가 '금리동결'을 점쳤다. 경제 불안으로 인한 상반기 인상 기대감이 크지 않았던 데다 지방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점은 5월 금리 동결론의 배경이 됐다.

무엇보다 고용과 생산, 투자까지 각종 지표가 악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4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2만3000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석 달 연속 취업자 증가수가 10만명대 초반에 그치는 '고용 쇼크'다. 실업률은 4.1%로 4%대의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지난 3월 중 전(全)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1.2%, 설비투자는 7.8%씩 감소했다.

낮은 물가도 기준금리 인상 여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올해 1~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전년 동월 대비 1.0%→1.4%→1.3%→1.6%를 기록, 목표치인 2.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기지원과 금융안정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한은으로선 금리인상에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 밖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일부 취약 신흥국들이 외환위기 등으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데다, 국제유가도 들썩이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고용지표 둔화와 정책 당국 내부의 경기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6월 북미 정상회담과 Fed의 기준금리 인상 등 이벤트가 연이어 대기하는 점은 통화 당국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시장 전망치대로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한국은 1.75%까지, 미국은 기준금리 상단은 2.50%까지 높아질 수 있다. 출처=이코노믹 리뷰 DB

한미 정책금리 역전 가속화

기준금리가 동결되면서 한미 간 정책금리 역전은 계속된다. 지난 3월 22일을 기점으로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가운데, 다음 달 13일(현지시각) 미국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대로 금리를 올리면 양국간 기준금리 격차는 0.50%포인트로 확대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경우 한미간 준금리 격차가 연말까지 최대 0.7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 전망대로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한국은 1.75%까지, 미국은 정책금리 상단이 2.5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준금리 격차는 0.75%포인트까지 커진다.  격차가 확대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본이나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약세)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임혜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로 한미 기준금리와 국채금리 역전 폭이 확대될 경우 한미 기준금리 역전을 작은 변수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금리차에 따른 이익이 한국 경기나 환차익에 따른 매력을 넘어선다고 판단하면 투자금을 회수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Fed는 점진적인 금리 인상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다. 현지시각으로 23일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Fed는 ‘비둘기적(통화완화)’ 입장을 내비쳤다. Fed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 일부 지표가 금리인상 기준선인 2%를 웃돌고 있으나 지속적 상승이기보다는 일시현상으로 평가했다. 또 장기로는 물가에 대한 기대수준이 2%에 수렴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더 오를 수 있으나  Fed 위원 대부분은 단기 물가 상승보다 중기 물가전망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시장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 총재는 "앞으로는 대외건전성을 양호하게 유지해서 외부충격에 대한 흡수력을 보강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통해 잠재성장이 지속가능하도록 이끌고 가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원론 수준의 말만 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미 금리 역전 폭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면서 "자본 유출은 내외금리 차보다는 경제 펀더멘털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6년에는 한미 금리 역전폭이 컸지만 국내 경기가 상승 국면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자본 유출이 일어나는 일부 신흥국을 보면 정책금리가 상당히 높다고도 말했다.

다음 인상은 7월? 4분기?

시장에서는 하반기 한 차례 금리 인상 전망에 힘을 싣는 추세다. 한미 금리역전과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금융불균형, 경기 하강 국면에 대비한 통화정책 여력 확보 필요성 등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은은 말을 아낀다. 이 총재는 “가계 대출은 신용 대출을 중심으로 큰 증가율 보이고 있어서 면밀히 지켜볼 필요 있다”고 말했다.

금리인상 예상시기 역시 조금 엇갈린다. ‘7월 인상론’이 아직 힘을 받고는 있지만 4분기로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애초 점쳐진 7월 인상 전망이 힘이 빠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 총재가 임지원 신임 금융통화위원의 취임식에서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아 앞으로 경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밝힌 게 7월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을 낮췄다는 평가다. 여기에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경기침체 국면 초입' 진단도 겹쳤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내경제는 견실한 성장세 보이고 있지만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와 국내외 여건 변화를 면밀히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