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5월 수출이 호조세다. 그러나 이면에는 묵과할 수 없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23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총 수출액은 291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8% 증가했다. 4월 수출이 1.5% 감소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성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출 품목별을 분석하면 반도체 매직이 두각을 보인다. 무려 42.8%나 차지하며 수출을 견인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효과다.

그렇기에 수출이 기지개를 켰지만 이면에는 묵과할 수 없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특히 세계적인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눈이 멀어 발 밑의 위기를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한국 경제의 주력인 제조업이 위기와 직면했다.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광업제조업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조사 대상인 68개 제조 업종 중 무려 53개 업종의 가동률이 1년 전과 비교해 하락했다. 산업 경쟁력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반도체와 자동차, 1차 금속, 금속 가공의 1분기 재고율이 급등한 것도 불안요소다. 제조업 취업자수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11개월만에 6만9000명이나 감소했다.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과 조선 분야 구조조정 후폭풍이라는 설명이지만, 전형적인 경기 침체 전조현상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사업 활황이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 침체 현상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나온다. ICT 인사이트 연구소 방주연 연구위원은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반도체 재고율도 110%를 넘기고 있으나, 이는 수요 증가에 따른 재고율 상승이기 때문에 악성 재고율이 아니다. 반도체가 국내 수출 품목 비중에서 40%를 넘기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끌어가는 디딤돌"이라면서도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제조업의 위기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취업률 등 모든 지표가 하락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수퍼 사이클이 떠받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붕괴할 경우 최악의 경제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한때 반도체와 함께 한국 경제를 책임지던 디스플레이 산업의 위기가 그 전조라는 주장이 나온다.

▲ LG디스플레이의 75인치 투명 플렉서블 OLED가 전시되어 있다. 출처=LG디스플레이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은 한국 천하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며 LCD 중심의 판도를 구축했다. 특히 LG디스플레이는 약 8년간 세계 1위 LCD 패널 출하량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줬다.

LCD 시장의 균열은 올해 1분기부터 시작됐다. 간헐적으로 중국 제조사들이 깜짝 반등을 이루기는 했으나, 올해 1분기 중국의 BOE가 약 20억위안(3억13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가 올해 1분기 983억원 영업적자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시기, BOE가 LCD 시장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셈이다. LG디스플레이는 LCD 패널량 기준, 지난해 3분기 이미 BOE에 덜미를 잡혔다.

반도체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현재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중국은 서서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넘보고 있다.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우한의 반도체 업체 XMC를 직접 시찰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반도체 펀드를 운영하는 한편, 최근에는 50조6200억원에 이르는 새로운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도 발표했다.

반도체 중심의 경제 호황이 수퍼 사이클을 타고 수출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지만, 이에 현혹되어 제조업 전반의 위기를 외면하면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반도체 산업에서도 중국에 덜미를 잡힌 디스플레이 산업의 사례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초기술 격차로 핵심 산업군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제 전반의 위기를 직면하며 정확한 문제풀이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2018에서 삼성디스플레이는 차량용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패널을, LG디스플레이는 77인치 투명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통해 경쟁자와의 기술 격차를 보여줬다"면서 "각 제조사 상황에 맞게 LCD에서 OLED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처럼,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현 경제 상황에 대한 냉정한 문제의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